"나? 한국 사람이야. 한국 이름도 있어."
말로만 듣던―, 그 유명하다는 반말 세례가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처음 만난 사람이 다짜고짜 반말부터 하는 상황은 '상대가 어린아이가 아니고선' 겪어본 적이 없던 관계로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물건을 구입한 손님에게 거스름돈을 내밀며 그가 하는 말은 '옛다, 이천 원. 가져. 가져'.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낯선 말투였다. 그를 인터뷰하고자 마음먹었을 때 가장 먼저 고민했던 것은 '영어를 쓸 것이냐, 우리말을 사용할 것이냐'였고, 그 다음은 '존댓말이냐, 반말이냐'였는데―

대구를 녹인 '액세서리 파는 남자' 만복이

   만복이는 영어와 우리말을 뒤섞어 사용했고, 어투는 경상도 사투리였으며
   또한 반말이었다. 그는 이웃 가게 아주머니를 '할매'라고 불렀다.

서울 명동에 이어 하루 유동 인구 전국 2위.
평일 최고 51만명, 주말 최대 129만명의 인파가 몰린다는 대구의 중심지 '동성로'.

이곳이 명동과 다른 점은 거의 모든 업종이 이 주변에 밀집되어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극장이 이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네 개의 백화점(내년엔 동성로 주변에만 백화점이 무려 다섯 개가 된다), 영풍문고와 교보문고와 같은 대형 서점. 전국적인 유통망을 자랑하는 브랜드 의류 업체의 플래그쉽 스토어를 비롯하여 글로벌 패션 업체 및 복합 쇼핑타운과 보세 의류 상가까지 한곳에 위치해 있다.

또 조금만 걸으면 '대구역'까지 이어지며, 한약재를 판매하는 '약령시'와 인사동과 대학로를 동시에 연상케 하는 '봉산문화거리', 용산처럼 컴퓨터 및 온갖 전자 제품을 판매하는 '교동시장'과 클럽 등 다양한 스타일을 지닌 공간들이 거미줄처럼 이어져있다.

심지어 쾌적한 환경을 자랑하는 도서관 및 공원, 게다가 대학 병원과 웨딩홀까지 모여있다.

쉽게 말하면 '강남과 종로, 명동과 인사동, 남대문과 동대문, 홍대와 대학로, 용산의 특징'을 한데 뒤섞어 놓은 셈. 그래서 쉴 틈 없이 걷다보면 어느새 해가 지는 곳이다.

누굴 만났는지, 뭘 먹었는지조차 잊게 할 만큼 복잡한 이곳에서 만난 사람이
바로 대구의 패셔니스타로 유명한,


"만복이다."

대구 생활은 10여 년째. 그는 자신의 이름을 '만복이'로 소개했다. 본명은 데이빗.
세네갈 출신인 그는 10여 년에 이르는 한국 생활 중 절반 이상을 대구 동성로에서 보냈다. 출근 도장 찍듯 거의 매일 동성로에 나와 가판을 열고 세계 곳곳에서 직접 공수한 온갖 액세서리를 빨래 널듯 늘어놓고 판매했으며, 지금은 자신만의 액세서리 가게를 갖고 있다.


앞서 말했듯 전국 2위의 유동 인구를 자랑하는 곳에서 장사를 했으니 웬만한 사람은 다 알아볼 정도로 지역 패션계의 유명 인사다. 특히 그의 터전인 대구 동성로에선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라고 하며, 지난 2006년 8월 8일엔 <무한지대 큐>에 나오기도 했단다.

그래서 그를 만난 뒤 다시 자료를 찾아보니,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속사포 반말 세례'는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었는데, 만복이의 말투는 흡사


그의 가게에 빈틈없이 자리잡은 액세서리들과 비슷했다.

말투가 딱 위와 같은 이미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절대 투박하거나 산만하진 않다. 형형색색의 액세서리들처럼 그의 말투엔 친근함과 애교 두 스푼씩, 신뢰 세 스푼이 적절하게 혼합되어 있다.


무척 조용한 공간이지만 그가 혼잣말처럼 내뱉는 랩과 힙합의 노랫말은 흥을 돋워준다. 그리고 딱 2%의 차이로 손님의 부담을 덜어내는 탁월한 재주도 지녔다. 디제잉하듯이 손을 흔들며 '둘러봐. 맘에 드는 거 있으면 말해'라며 갑자기 가게 문 밖으로 나가는 그를 보며 황당해 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듯.


직원도, 사장도 없이― 손님 혼자 남겨진 가게의 분위기는 무척 이국적으로 다가왔다.

손님이 혹여나 뭘 훔쳐가지나 않을지 걱정하는 눈빛도 없이 그는 바람처럼 쓰윽 나갔다가, 역시 바람처럼 쓰윽 들어온다. 손님에게 '폭풍 신뢰'를 주는 사장이 바로 '만복이'다.

액세서리에 담긴 그의 마음



인도, 페루, 아프리카 여러 지역 및 중남미, 동대문 등에서 직접 공수한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그에게 얼마나 자주 해외로 나가냐고 물어보니 대뜸 나온 말은
"비싸. 배타고 비행기타고 다니면 비싸. 한꺼번에 왕창 사서 들어와."
였다.

특별히 주기를 정하고 다니진 않고, 팔만한 물건이 떨어질 때 쯤이면 가게 문을 닫고 해외로 나간다고 한다. 액세서리를 고르는 기준은 그저 '딱 봐서 특이하고 예쁘면 끝'이었다. 그에게 <유행 액세서리 리서치나 패션 트렌드 정보>는 그다지 중요한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하지만 참으로 '용하게도' 그에겐 감각이 있는 듯했다.

올 가을/겨울 시즌 각광받는 '깃털 포인트'가 달린 뱅글이 중앙에 위치해 있었던 것. 가격은 만 오천 원. 팔목 끝에 살짝 끼는 순간 손끝에서 '우아함'이 자기장처럼 느껴지는 그런 매력적인 아이템. 검정색과 검붉은색, 딱 두 개 남아 있는 것 중 검정색만 냉큼 챙겼다.
(처음엔 선물용으로 구입했으나, '보면 볼수록 내꺼'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선물로 줄지 말지 고민 중)


그런데 그는 트렌드 정보엔 무심했다. 트렌드보다는 '희소성'이 먼저다.
그래서 액세서리를 판매할 때도 이 점을 특히 강조한다고.


한눈에 보기에도 빼곡할 만큼 수많은 액세서리들.


놓을 곳이 없어 이렇게 에어컨 위에도 가방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딱 보면 알 수 있듯 비슷한 재질의 가방이라 하더라도 구슬의 색깔과 꼬임의 정도에 차이가 있는데, 바로 이 점이 그의 사업 수완이다. 비슷해 보여도 아주 조금씩이라도 차이를 두는 것. 그래서 남과 다른 자신만의 취향을 즐기도록 이끈다.


그리고 특정 트렌드나 문화, 특정 아이템을 권유하지도 않는다. 많이 팔린다고 해서 그 제품만 쌓아두거나, 많이 팔리는 걸 물어봐도 알려주지 않는다. 되려 '니가 맘에 드는 거 사'라고 말할 뿐이다. 남의 취향에 자기 마음을 가두지 말라는 은유적 표현인 듯.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그의 이같은 자세엔
 '피부색이 다른 이방인이 한국 사람들과 어울리고자 노력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가 처음 내뱉은 말, '나 한국 사람이야. 한국 이름도 있어'라는 경상도 억양의 두 마디엔 그간 살면서 부딪혔던 애환마저 느껴졌다.

할머니를 '할매'라고 부르는 청국장 냄새나는 단어 선택에선 그가 어떻게 우리말을 익혔는지도 언뜻 엿보였다.

또한 한국에서 한국 사람을 상대로 장사하며 한국인과 조화를 이루며 살고자 하는 그의 삶의 자세는, 수시로 드나드는 이웃 상인들과의 교류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었다.


먼저 말을 걸고, 먼저 농담을 건네고, 먼저 신뢰를 주는 그의 태도는 어쩌면 그가 이 복잡한 상권인 '동성로'에서 터를 잡고 살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먼저 상대를 존중하겠다는 자세는 '자신의 취향대로 액세서리를 고르라'는 그의 말 속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었다.


다문화에 대한 존중의 자세. 또한 사람들이 그렇게 자신을 존중해 주기를 바라는 그의 마음은 <황동 구리선으로 만든 나뭇가지에 매달린 서로 다른, 각양각색의 액세서리를 통해> 그대로 표현되고 있는 듯했다.

오랜 가판 생활 끝에 3년 전부터는 동성로에 가게 하나를 차려놓고 정식으로 패션 사업에 뛰어든 데이빗, 아니 만복 씨.
이곳 한국에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한다. 외롭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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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달려라꼴찌 2010.10.29 11:43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와, 대구 동성로가 유동인구가 생각보다 대단합니다. ^^
    주말이면 대구사람 거의 전체가 동성로를 밟는 셈이네요 ^^;;;

  2. 하랑사랑 2010.10.29 12:11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너무 웃긴건 제가 만복이라는 이름을 듣고 딱 저 스타일로 상상했거든요.
    사진보고 혼자 빵 터졌네요.
    저 혹시 예지력을 가진게 아닐까요? ^^;;

  3. 소춘풍 2010.10.29 12:23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만복씨의 쎈스가 눈에 보여요.
    반짝이는 악세서리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분, 데이빗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지네요.
    잘보고 갑니다. White Rain 님. ^^

    • 하얀 비 2010.10.29 19:28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사실 좀더 세밀한 삶의 이야기를 물어보고 싶었지만...그럴 수 없었어요. 하지만 순간순간의 눈빛과 표정과 액세서리들은 현재의 그를 충분히 표현해주고 있었답니다.

  4. 사랑해MJ♥ 2010.10.29 13:10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만복이 ㅋㅋ
    이름도 정겹고 말투도 괜히 상상되면서 재미있네요 ^^
    비싸~ 왕창사서들어와..ㅋㅋㅋㅋㅋㅋㅋ

    그의 썩쏘도 정겹습니다 히히힛 ㅎ

  5. 초록누리 2010.10.29 13:23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만복씨 친근한 이름이네요. 악세서리 문양이나 디자인도 재미있고...
    나 한국사람이라며 한국 이름도 있다는 그의 말에 저 역시 속을 알 것같은 애환도 느껴지네요.
    만복씨 화이팅!

    • 하얀 비 2010.10.29 19:26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정말 디자인,,문양 다양했답니다. 그는 벽을 쌓아두지 않는 사람 같았어요. 제가 갔을 때도 이웃 상인이 가게를 대신 봐주고 있더군요. 30분 기다려야 나타났다는..^^

  6. 유 레 카 2010.10.29 13:25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동성로 가면 한번 꼭 보러 가야겠네요 ㅎㅎㅎㅎ

  7. 핑구야 날자 2010.10.29 13:35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다문화.. 이제는 단일민족이라는 말보다는 같이 사는 사회로 가고 있는 듯 해서 기분이 좋습니다.

  8. 최정 2010.10.29 13:49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나는 정말 이런남자가 좋아요~ 자유분방한 삶을 살고~
    그리고 다문화에 대해서 선입견 자체가 없기에~
    아주 좋아보이네요~

  9. 카타리나^^ 2010.10.29 13:56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와...쫌 대단하신분이네요
    쉽지가 않았을텐데...
    집이 대구라면 당장 가서 한번 만나봤으면 싶지만...여긴 인천이고 ㅜㅜ

  10. 꿈찾은여인 2010.10.29 14:10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우왓 진짜 오랜만에 봐요~~
    시내갈때면 항상 길바닥에
    악세사리 가득 펼쳐놓고 팔고 있었거든요 ^^ 가게까지 차렸다니 역시 그열정 멋진대요 ^^

  11. 일반인의 시선 2010.10.29 14:29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와 멋진데요.
    대구 언제 함 갈때 들러봐야 될 것 같네요 ^^

    • 하얀 비 2010.10.29 19:23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아주 작은 공간이었지만, 정말 좋은 추억이었어요. 타인에 대한 경계의 눈빛이 전혀 없는, 그렇다고 해서 어떤 이기적인 마음도 보이지 않는 그런 분위기였답니다.

  12. 아이미슈 2010.10.29 15:20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음..정말 멋진걸요..
    소신있고..
    인생을 즐길줄 아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만복씨 화이팅입니다.ㅎㅎ

  13. 국제옥수수재단 2010.10.29 15:20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산다는 게
    참 감사합니다.^^

  14. *저녁노을* 2010.10.29 20:52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타국에서 악세사리를 파는 다부진 사람이네요.ㅎㅎ
    잘 보고갑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15. 자 운 영 2010.10.29 23:04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오 깃털 팔찌 감각 잇네요^^
    인사동에 와 있나하는 착각이 ㅎㅎ^
    잘보고 가욧^^

    • 하얀 비 2010.11.01 21:43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정말 다양한 무늬의, 각국의 전통적인 문양의 액세서리가 많았답니다. 액세서리만 봐도 세계 여행하는 그런 기분..^^

  16. Desert Rose 2010.10.29 23:47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베스트 축하드리구요..소재가 독특하고 글도 좋고..잘 보고 갑니다..
    저도 외국에 살고 잇어서 타국에서 지내는것이 쉽지만은 않다는것을 알고 있는데 만복이는 적응도 잘 하고 잘 지내고 있는것 같습니다..
    주말 잘 보내시고 시간나시면 제 블로그에도 놀러오세요!

  17. wanso 2010.10.30 01:16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제목보자마자 '어! 만복이!'라고 생각했는데 ㅎ
    학생때 아이들 사이에선 '만복이~만복이' 막 부르고 다닐만큼 정겨운 사람이였던듯.
    고등학생때던가? 길 깨끗하게 한다고 중앙로에 가판대를 다 치워버리기전에
    바닥에 까만천 펼쳐놓고 장사할때 앉아서 구경한게 기억나네요.
    가판대를 다 치워버려서 상인분들이 집회할때도 별 생각없었는데
    어느날 작은 가게를 하고있는거보고 안심했었다는;;
    정작 산적은없지만 ㅎㅎ 조만간 들려서 구경 좀 해야겠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 하얀 비 2010.11.01 21:42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훗. 만복 님과 관련한 추억도 있었군요. 그때 그 시절의 광경이 문득 떠오르는데요? ^^. 안심했다는 말에 정이 물씬 느껴집니다.

  18. Calliope 2010.11.01 10:55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만복이 ㅋㅋ 이름이 참 친근하네요 ㅋㅋㅋ
    악세사리도 이쁘고, 만복씨도 재밌는거 같아요 ㅋ
    나중에 대구에 가게되면,
    동성로에 만복씨네 가게 꼭 한번 가보고 싶네요 ㅋ

  19. Phoebe Chung 2010.11.01 12:17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걸려있는 악세사리 보니 만복씨 패션센스도 짱입니다.
    얼굴도 미남이고.... 번창하시길...^^

    • 하얀 비 2010.11.01 21:40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게다가 무척 친절했답니다. 피비님 한국 들어오시면 한번 들르시길..^^ 저는 저곳에서 몇 시간을 죽 치고 있었답니다. 너무 많아서 일일이 보다보니 시간이 훌쩍..^^

  20. 바닐라로맨스 2011.04.28 03:14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와우!!! 만복씨 만나러 가고 싶네요!
    몇해전에 기차여행하다가 동성로에서 하루를 보낸적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멋진곳이어서 서울인지 대구인지 구별이 안갔었는데 명동에 이어 유동인구 2위라 놀랍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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