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오롯하게 담아낸 마을"
구름이 능선을 따라 아장아장 걷는 곳.
키낮은 돌담 위로 수줍게 나뭇잎을 드리운 감나무들과 속삭이듯 흐르는 개울물. 100여 년 전 완공된 철도 터널에선 옅은 안개처럼 감와인 향이 피어오르는―, 청도군 화양읍 송금리. 흡사 손금처럼 뻗어있는 마을의 갈래길은 호기심을 건드리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산수화같은 이 시골마을에 '대략 1000만원이 넘는' 네덜란드산 명품 가구가 하루방처럼 시치미 뚝 떼고 서 있었기 때문이다.


시골집에서 발견한 '천만 원짜리 가구'



무궁화호에 몸을 실은 뒤 오후 늦게 도착한 청도군의 첫인상은
조용하면서도 포근했다.


할아버지 품에 의젓하게 안긴 소년같은 모습의 철길을 뒤로 하고
잽싸게 택시에 몸을 실어 도착한 곳은
바로 송금리.


택시 요금은 대략 14,000원 조금 넘게 나왔는데,
청도 시외버스 터미널로 가서 송금리행 군내 버스를 타는 방법도 있다.


송금리 야외 공용 주차장에 도착하면 두 갈래 길을 마주한다.
오던 길을 따라 그대로 직진하면 청도 와인터널이고, 왼쪽 길을 따라 조금만 더 걸어가면 김주혁·한혜진 주연의 와인 소재 드라마 <떼루아 세트장>이 나온다.


안내 표지판을 보며 걷다보면, 연속적으로 두 갈래 길이 나오는데
망설이지 말고 계속해서 '왼쪽 길'만 이용하면 된다.


감나무와 돌담 사잇길을 아늑하게 걸어올라 가다보면
어느새 마주하게 되는 것이 바로


<떼루아 드라마 촬영장>이다.
현재 이곳은 이탈리아 베니스 유리공방 '스키아본 가문'의 400년 전통이 묻어나는 유리 공예 작품의 일부가 전시 중이다. 관람 요금은 5천원.


매표소를 뒤로 하고 들어가면 드디어
드라마 <떼루아> 촬영 세트장을 만날 수 있는데, 동화에서 보는 듯 숲 속에 파묻힌 듯한 분위기가 특히 매력적이었다.


와인 저장고 및 와인 연구를 위해 활용했다는 세트장.
지금은 <베니스 글라스 판타지아 전>이 열리고 있다.

세트장 왼편을 보면―


옛스런 우물과 수령이 70년 정도인 감나무가 고즈넉하게 땅을 지키고 있는데,
감나무 아래에 앉아 자연을 느끼는 것도 이곳을 즐기는 한 방법.

마침 세트장 마당 한 켠엔


아이스크림 판매대가 있으니,
의자에 앉아 시원하게 여유를 좀 부릴 수도 있다.

그리고 아이스크림 판매대 너머로 보이는 시골집 한 채.


방문 두 개에 걸쳐 비스듬하게 기대어 있는 모자이크 모양의 넓은 판 역시
유리 공예 작품 중 하나. 하지만 그보다 더 눈길을 끌었던 것은
집 오른편 구석에 숨어있는 장식장
이었다.


부엌 문 옆과 장독대 사이에,
이미 오래 전부터 누군가가 쓰다 내놓은 것같은 모습의 나무 찬장. 집 벽과 장독대, 그리고 마루와도 무척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좀더 자세히 보도록 하자.


은은한 색상의 서로 다른 나무 조각들을 이어붙여 만든 모양새가 이색적인데, 사실 이 가구는 네덜란드의 유명한 산업 디자이너 '피트 하인 이크'의 작품이다.

더소울오브디자인세계디자이너20인디자인의혼을말하다
카테고리 시/에세이 > 인물/자전적에세이
지은이 AA 디자인 뮤지엄 (이마고, 2011년)
상세보기

그의 삶과 작품 세계는 지난 5월 말 출간된 단행본 <더 소울 오브 디자인 : 세계 디자이너 20인의 디자인 혼을 말하다>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으며, 2008 리빙 디자인 페어와 2009 청주 공예 비엔날레를 통해 국내에 널려 알려진 디자이너다.

피트 하인 이크(Piet Hein Eek) / 제품 디자이너
출생 1967년 04월 42일
신체
팬카페
상세보기

여동생의 찬장을 수리해주다가 우연히
길가에 버려진 낡은 가구와 목재의 아름다움에 눈떴다는 그는 이후, 오래되고 낡은 목재를 소재로 가구를 제작해 선보였다. 이른바 '스크랩 우드'로 불리는 그의 작품은 즉각적으로 전세계적인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으며,

소재 자체의 특성상 오직 하나만 만들 수 있다는 희소성과 장인정신이 깃들었다는 점 덕분에 가구라기보다는 예술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그의 작품을 <떼루아 세트장>에서 만난 건 예상치 못한 우연이자 행운이었다.
그것도 우리나라의 시골집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모습을 한 채로.

하지만 단지 천만 원대 중반에서 거래되는
값비싼 그의 작품을 만났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이미 그 자체로 오랜 세월을 견디며
자연스럽게 얻은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다"
(부분 인용 - Aa 디자인 뮤지엄『더 소울 오브 디자인』이마고 2011)
며 길가에 버려진 낡은 가구의 가치에 대해 말하는 '피트 하인 이크'의 예술혼은 청도군에 위치한 이 시골 마을의 아름다움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청도군 송금리 곳곳엔
오래되고 낡은 가구나 집기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옛날 어느 학교 교무실에서 선생님이 사용하셨을 것만 같은
녹이 슨 철재 책상과


오랜 시간 농부들의 목을 시원하게 축였을 법한
막걸리 주전자 등등.

시골 마을은 이미 그 자체로
세월이 주는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낡고 오래된 돌담 위로 새 생명이 돋아나듯
그 아름다움은 여전히 새롭게 다가온다.


이처럼 디자이너 '피트 하인 이크'의 예술 작품과 어우러진
청도군 시골 마을의 풍경은 도시 생활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낡은 것의 아름다움>에 대해 새삼 되돌아보게 하는 기회를 선사하는데,
   바로 이 점이 '천만 원짜리 가구'가 지닌 진정한 가치이자 숨은뜻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늘 새로운 유행에 목말라 하는 패션계 종사자들에게도 깊은 감동을 주는 시골마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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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꽃집아가씨 2011.08.02 11:23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오래된 물건들이 속속히 보이네요
    저 철로 된 책상 진짜 오랫만에 보는듯해요^^

  2. 사랑해MJ♥ 2011.08.02 11:44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어이쿠 천만원...덜덜덜이네요 ㅎㅎ

  3. 카라의 꽃말 2011.08.02 12:44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천만원 짜리 장식장이라니요...^^
    저도 덜덜덜.. 입니다^^
    즐거운 하루 되시고요~ 파이팅~

  4. 핑구야 날자 2011.08.02 12:53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오래된것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는군요

  5. 새빛향기 2011.08.02 13:16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아주아주~~!! 시간이 많이 흐른뒤에는 낡은 책상과 오랜된 건물과 돌담들이 그리워지겠죠?
    추억을 떠올리며 과거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네요,,,하하하
    좋은 사진 잘보고 갑니다..^^*

  6. 이유가 2011.08.02 16:56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내용은 패션글 아닌데 마지막 말에만 패션이라는 단어가 참 어이없네요.,,,ㅠ
    차라리 여행 카테고리라면 이해되는데 ㅎ

    • 하얀 비 2011.08.02 17:11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제가 이 글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바는
      디자인 철학에 대한 것입니다. 그것이 가구가 되었건, 옷이 되었건 간에 말이죠. 실상 이 글은 여행 글이 아니라, 삶 속에 발견하고 깨닫는 예술과 미학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물론 패션을 단지 '옷'에만 국한해서 바라본다면 이해할 수 없겠지만, 저는 패션이든 뭐든 그 중심엔 삶과 철학이 자리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카테고리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기보다는, 겉보기에 예뻐보이는 것 그 이상의 삶의 본질에 대해 대화를 나눌 사람이 제겐 필요하죠.

  7. 안토니오팍 2011.08.02 17:13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어 내고향이네... 너무 목가적으로 표현했군요 지나가는 나그네의 시각으로 표현하셨군요
    그기서 한일년 살아봐요
    님도 도망을 쳤을 겁니다 이건뭐 예술도 한순간이고... 쥐 죽은듯 조용한 시골...무덤같은 적막....
    시끄러운 도시가 그리워지는데 필요한 시간 딱 1달...

  8. 굴뚝 토끼 2011.08.02 17:15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분야는 다르지만 모든 디자이너의 딜레마죠.
    새것과 옛것!

    서울에는 너무 새것만 있어서 이젠 저런 낡은 것들을 주변에서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_-

  9. 파리아줌마 2011.08.02 19:44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네델란드 작가의 작품이 우리의 시골집과 저렇게
    어우러질수 있군요,,동서양 그리고 옛것과 새것을 막론하고
    서로 통하는건 있는가 봅니다.^^

  10. 명연 2011.08.02 20:25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저도 오래된 물건이 좋아요. 마음이 편안해지지요.
    현대 가구는 조금만 때가 타도 싸구려티가 나요.
    그래서 저희 집도 좀 엔틱 스타일로 꾸몄답니다.

  11. 2011.08.02 21:09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비밀댓글입니다

  12. 남성현 2011.08.02 21:10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송금리...여기 제가 어릴적 자랐던 동네죠....
    막상가보면 평범한 시골 마을인데 사진으로 보니 새롭내요^^

  13. mark 2011.08.04 10:32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어째 분위기가 을씨년 스럽습니다. ㅋㅋ

  14. RiA 2011.08.04 23:29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굉장히 무심히 놓여져있어 더 아름다운것 같습니다.
    만약 저 장을 화려한방에 고이고이 놓았다면 저런 편안한 아름다움은 나오지 않을 것 같아요^*^

    청도한니......역근처 할매김밥이 먹고싶어졌어요....
    나중에 또 가신다면 꼭 드셔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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