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맛본 최고의 요리는"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먹었던 된장찌개와 김치였다. 담백한 손두부와 구수한 장맛은 아삭하면서도 시원한 김치맛과 어우러지며 환상적인 풍미를 자아냈었다. 된장찌개 한 숟가락을 떠서 흰쌀밥과 버무리고, 그 위에 김치 한 조각을 얹어 먹던 그 시절의 저녁식사. 마당 한쪽에 놓인 평상 위에 커다랗게 모기장을 둘러치면 아득한 식사 공간이 되곤 했으며, 풀벌레의 라이브 연주와 밤하늘의 샹들리에는 공감각적인 맛을 연출해주기도―.

매혹적인 손맛

   이처럼 눈과 입과 귀와 코와 마음이 기억하는 할머니표 저녁식사는 마치 옹기에 담긴  장맛처럼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짙어지는 것만 같다.


할머니께서 손수 담그고 빚어낸 장맛.
하늘과 땅, 해와 바람의 기운으로 숙성시킨 김치.

시골 할머니집의 장독대와 마당은 손맛의 저장고였다.
무슨 보물이라도 숨겨놓은 듯했던 옹기. 그래서 설렌 마음으로 뚜껑을 몰래 열어보다가 소스라치게 놀라 옹기 뚜껑을 깨버린 적도 있었는데,


근 1세기만에 복원된 경복궁 장고를 보다보니
연못 위로 비치는 나뭇잎마냥 할머니의 손맛이 은은하게 느껴졌다.


2001년 발굴 조사에 들어가 2005년 복원되었고
그로부터 또다시 세월이 흘러 마침내 지난 주말,
일반인들에게 최초 공개된 경복궁 장고.



장고 및 옹기는 경복궁의 운치를 더해주는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 중 하나다.


배 드러내고 누워있는 매미의 날개짓처럼
여름 늦더위와 가을 정취가 한데 뒤섞였던 9월 17일 토요일,
경복궁을 배경으로 찍은 스트리트 패션 한 장.

가을이라 하기엔 나쁘지도, 그렇다고 해서 좋지도 않았던 날씨였지만
상의는 지붕과, 하의는 난간의 화강암 색깔과 묘하게 조화를 이룬 덕에
반팔 무지 티셔츠와 베이지색 치노 팬츠가 근정전 주변과 꽤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베르사유 궁전처럼 경복궁도
세계인 누구나가 이름만 들어도 떠올릴 수 있는 그런 곳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오늘의 메인 테마!



거센 유행 바람을 탔던
북유럽풍 빈티지 그릇들처럼
우리 고유의 옹기도 세계 속에서 빛났으면 하고 염원해 본다.


아무래도 한국인의 입맛 정서와 문화·생활의 역사를 드러내는 데엔
옹기만한 것도 없을 것이므로.


'술독이나 돈독에 빠졌다'는 풍자가 웃음을 자아내는 데엔
우리 정서 깊은 곳에 옹기와 어우러진 문화적 공감대가 유유히 흐르기 때문일 듯. 그나저나 과연 '술독'은 실제로 보니 깊이 빠질 만한 매력이 있었다.


풍요로운 곡선미와
입지름과 밑지름의 비율이 자아내는 균형미는 차분하면서도 역동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때문에 보는 이의 눈 역시 쉴 틈이 없다.


'옹기종기'란 바로 이런 것.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모양과 빛깔, 크기 등이 서로 다르다.


옹기 또한 장인의 감성을 따르는 덕분.


흙을 매만지고


다듬고


모양을 내는 일은 결국 장인의 손놀림에 달려 있다.


그래서 옹기 표면엔 손의 흔적이 감도는데,
장맛과 마찬가지로 이를 담아내는 '독' 역시 손맛의 매혹이 깃들어 있다.


9월 16일(금)부터 옹기전이 열리고 있는
경복궁 장고 한켠엔 이렇듯


9월 17일부터 10월 2일까지
매주 토·일, 하루 두 차례에 걸쳐 전통 옹기 제작 과정 및
장인의 섬세한 감성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는데,


시연을 하는 주인공은 바로


55년 동안 한결같이
세계에서 유일한 우리만의 전통 방법인
'쳇바퀴 타래미 기법'으로 옹기를 만들어온 장인 정윤석 옹.


16세 때 옹기장에 입문하여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지금은 미국 스미스 소니언 박물관에서 상설전시까지 하는
우리 시대의 장인이다.



즉석에서 만든 그릇과 항아리의 표면은
여전히 그의 손길로 생생하기만 하다.

그리고 아버지의 업을 계승하고 있는


정윤석 옹의 아들 정영균 씨의 작업도 함께 지켜볼 수 있다.
EBS를 비롯 여러 언론 매체에 이미 소개된 바 있는데,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곁에서 흙을 캐고 옹기 나르는 심부름을 하다가 흙 만지는 즐거움에 흠뻑 취했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흙과 친했기 때문일까.
황토색 작업복은 그와 너무나 잘 어울렸다.

55년 넘게 한길만 걸어왔던
옹기장 아버지처럼.


아울러
임금님 수라상의 비밀이 경복궁 장고에 있듯,
또 어떤 마음과 손길로 빚느냐에 따라
옹기의 빛깔이 서로 다르듯

깊이감 있는 멋의 근원은 어떤 옷을 입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에 달렸다고 말해주는 듯도 했는데

   눈길 사로잡은 매혹적인 손맛과 더불어 우리 문화와 삶의 향기도 은은하게 흐르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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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11.09.19 09:16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우리의 숨결이 느껴지옵니다.
    음식의 맛을 내는데는 장맛이니까요.

    잘 보고가요. 즐거운 한 주 되세요.

  2. 카라의 꽃말 2011.09.19 09:53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경복궁을 아직 한번도 못가봤는데.. 가보고 싶네요~
    이번주도 즐거운 한주 되시고 힘내세요~ 아자아자~ 파이팅~

  3. 노이베이 2011.09.19 11:22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가을바람 살랑살랑부는데 지금같은 날씨에 딱이죠!
    이번기회에 한번 가봐야겠어요~^^

  4. 핑구야 날자 2011.09.19 12:13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손길을 조금 느끼고 갑니다. 경복궁 가보지도....

  5. 유아미 2011.09.19 16:18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숨쉬는 그릇 옹기~ 너무 예뻐요. 이 가을에 보니 더욱 멋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6. 황토마을 2011.09.19 17:50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경복궁 뒷켠에 이런곳이 있었군요..
    옹기종기..제각각 자태를 뽐내고 있는 장고의 옹기들 모습이 운치있읍니다
    흙을빚는 장인의 솜씨도 함께..가을날 경복궁 나들이 해봐야겠군요~^^

  7. 소인배닷컴 2011.09.19 22:42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멋지군요. 경복궁 다시 한번 가봐야겠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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