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광등을 햇빛 삼아,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를 음악 삼아..."
2011 중앙대 예술대학 디자인학부 패션디자인 전공  졸업준비위원회의 인사말 첫 문장을 읽던 중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잔디밭에서 밤을 지새고, 드넓은 도서관에서 보물찾기 하듯 책을 찾아보던 일. 점심값을 내려고 하는데, 교수님이 이미 다 계산하고 가셨다는 식당 아주머니의 미소. 방학을 맞이해 한산한 교정을 나홀로 걷던 밤의 산책. 녹차를 마시며 물끄러미 눈 쌓인 뜰을 바라보던 그 순간들.

빼앗아 입고 싶을 정도!



추억이 햇살에 실려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학생회실에 선·후배들이 옹기종기 모여 시험 공부하다 말고 치킨을 배달시켜 먹던 그때만큼 맛난 기억도 흔치 않은 듯하다.


4년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시간의 마디들이 도무지 정리가 안 된다. 그저 쏟아지는 햇살마냥 입학식과 졸업식이 뒤섞여 떠오를 따름이다.


중앙대 패션디자인전공 2011 졸업 작품 패션쇼.
열정의 온기가 뜨겁기만 했다.

4년이라는 시간 동안 후배로서, 선배로서, 학생으로서, 제자로서
그들이 힘차게 천을 자르고, 곱게 색을 입히고,
조심스럽게 바느질 했을 그 시간의 정차역.

런웨이가 마치 시간의 레일처럼 느껴졌다.


졸업 작품 패션쇼의 대주제는 '연결'이다.
졸업이라는 단어와 연결이라는 테마가 묘하게 오버랩된다. 4학년 2학기라는 그 미지의 생활을 보내는 학생들의 꿈은 '연결'이라는 표현만으로도 깊이 와닿는다.


넥타이로 머리를 장식하고,
데님 팬츠를 윗옷으로 만들고, 버튼다운 셔츠의 커프스를 드레스의 주머니로 활용하는 대학생의 상상력은 위트로 가득했다.


맥시드레스는
블라우스의 옷깃과 단추를 변용한 형태다. 졸업 작품을 준비하며 무수한 별들과 대화를 나눴을 학생들의 노고가 느껴졌다.


셔츠의 칼라를 여러 겹 덧대어 과장되게 표현하고
그 속에 힘을 불어넣어 어깨를 감싸도록 형태를 만들었는데,
재치있는 스커트와 대비되는 중용의 맵시가 맘에 쏙 들어왔다.


보자마자
당장 빼앗고 싶은 마음이 일렁였던 옷 중 하나.

민무늬와 바둑판 무늬,
그리고 그레이와 레드의 균형감 있는 조화.
재치있게 그려넣은 단추 모양의 동그라미와 교장 선생님 가방에 이르기까지, 마치 정성껏 지어올린 빌딩처럼 느껴질 정도로 구조적 미학이 돋보였다.


어깨와 소맷부리를 체인으로 연결한 재킷 역시 마찬가지.


각각의 옷에 담긴 학생들의 감성―,
졸업이 끝이 아니라 또다른 세계와의 연결이라는 그들의 표현.
패션을 통해 세상과 대화하고자 하는 그 마음이 느껴졌다.


뉴트럴 컬러로 통일한 이 옷들의 소주제는 '인간관계'.

그 때문인지
로맨틱한 무드와 고독한 감성이 한데 뒤섞인 듯한 모습이다.

서로가 서로를 그리워하지만,
스스로 손내밀 용기를 차마 내지 못하는 인간의 나약함. 그러면서도 영혼을 포근하게 감싸줄 뭔가를 찾고자 원하는 마음. 결국엔 자기보호로 귀결되는 것처럼 다가오기도 하는데, 간결한 표현 속에 이처럼 사람들의 복잡한 내면이 담겨있다.


바다와 땅, 자연과 인간의 공존.
눈길을 끌었던 것은 바다를 담아낸 드레스 자락 앞에 놓인 구두.
구두 앞코와 아웃솔은 흡사 뱃머리를 떠올리게 했는데, 이같은 섬세한 표현력에 미소가 절로 나오기도―.


대학을 졸업하면 지극히 현실적인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상상력과 꿈보다는 통장 잔고와 지로 용지에 허덕이는 삶의 파편들. 하지만 대학생들의 패션쇼를 보다보니 어렸을 때 그려본 환상의 지도가 새삼 떠오른다.

친구들과 어울려 만화 신문을 만들어 보기도 했고,
공상에 빠져 소설을 써보기도 했던 그 시절의 기억. 그땐 삶의 기쁨 중 하나이자 삶을 살아내는 원동력 중 하나였다.

분명 그런 나날이 내게도 있었음을 되새기게 하는 옷.

정작 빼앗고 싶은 건 옷이 아니라
대학생들의 열정과 상상력이 아닐까, 스스로에게 반문해 본다.


9월의 마지막 밤, 그리고 금요일.

이렇듯 아직은 열정과 패기가 넘치는
학생들의 작품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기도 했는데―
   한국 패션의 미래를 짊어질 이들의 발걸음을 앞으로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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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왕비마마 2011.10.01 09:43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우와~ 창의력과 열정 상큼 발랄함까지 돋보이는 패션쇼현장이네요~ ^^

    울 레인님~
    멋찐 주말 기분 좋~은 10월 되셔요~ ^^

  2. 소랜덤 2011.10.01 11:32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좋은 글/사진입니다
    주제가...연결
    연결인지 모르고 보면 연결인지 모르겠지만..
    연결이라 생각 하고 보니 연결이 보입니다.

  3. 또웃음 2011.10.01 16:30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학생들의 실력이 대단한데요. ^^

  4. 핑구야 날자 2011.10.01 21:52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창의적인 디자인이 대학생들의 무기죠.. 이런 창조정신이 세상을 한번더 앞으로 내딪게 되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5. dry extruder 2011.11.14 11:52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컨셉이 특이한데요
    볼만했을 듯 합니다.
    저는 사진으로 만족하고 갑니다.
    노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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