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네놀이를 좋아했었다."
양손으로 밧줄을 잡고, 발판 위를 두 발로 딛고 서는 그때의 떨림은 여전히 생생하다. 귓볼을 타고 흐르는 바람, 그리고 파도처럼 일렁이는 머릿결. 바람과 그네에 내 몸을 맡기면 무상의 정서에 취하게 된다. 그렇게 그네를 타며 '숙제 안 한 두려움'을 떨쳐내곤 했었다. 특히 그네가 가장 높이 올라섰을 때, 즉 에너지가 소멸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느낄 수 있는 '정지의 환희'. 마치 온 우주가 멈춘 듯했던 그 찰나의 순간은 결코 잊을 수 없다.


숨 막힐 듯한 여인의 자신감



통나무 기둥과 그네 발판을 단단히 엮어주는 밧줄.
안정감 있는 A라인의 실루엣과 평온함을 느끼게 하는 모래 빛깔과 초록. 의복을 구성하는 요소 하나하나가 숲 속의 그네를 떠올리게 한다.


지난 10월 2일, 경복궁에서 열린 '코리아 헤리티지 패션쇼'에서
디자이너 홍혜진은 그네놀이 하는 여인의 마음을 옷으로 표현했다.

바람결에 일렁이듯 주름진 회색 빛깔의 치맛자락에선 무념무상의 정서가,
고동색으로 포인트를 준 초록색 상의는 '드넓은 초원 위에 나무가 듬성듬성 자리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여기에 어깨를 장식하고 있는 통나무와 액세서리로 활용한 그네는
자연 속에 살아숨쉬는 인간의 모습을 엿보게 한다.


옷을 보다보니
그네놀이 하기 전에 발판을 지탱하는 줄이 얼마나 단단하고,
내 몸을 내맡길 만한지 확인해 보던 어린시절의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안전하면서도 자유롭게 상공을 항해하고자 하는
여인의 마음이 옷을 통해 아스라이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


디자이너 홍혜진이 그네놀이하는 여인의 모습을 패션으로 표현했다면,
임선옥은 도자기를 옷에 품었다.

블라우스와 스커트가 한 벌로 구성된 맥시드레스는
가냘프지만 견고한 우리네 도자기의 숨결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착 떨어지는 듯한 실루엣이면서도 지루하지 않은 이유는 상·하 구분선보다 높이 올라와 있는 소매 선과 트임을 준 스커트, 그리고 헤어스타일 덕분이다.

우리 선조들의 도자기에서 엿볼 수 있는 구조적 미학을
디자이너 임선옥은 이렇듯 스타일의 형태적 안정감으로 치환시켰다.


그녀가 런웨이에 선보인 옷 중 특히 눈길을 끌었던 것은
미키마우스를 닮은 듯했던 캐릭터. 자세히 보면 얼굴이 도자기로 표현되어 있으며, 몸의 형태 역시 도자기를 닮았다.

입기 편한 옷과 재치있는 캐릭터가 만난 덕분에
우리 문화유산이 더욱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언뜻 보면 그저 물방울무늬처럼 보이지만,
좀더 눈을 크게 뜨고 보면 도자기의 형태를 본떴다는 걸 알 수 있다. 이같은 옷의 무늬는 서양의 도트 패턴과는 차별성을 지니면서 동시에 우리 문화유산을 패션으로 계승한 것.

뿐만 아니라
도자기에 깃든 선조들의 마음을 여유로운 실루엣으로 담아낸 덕분에
풍류의 정서마저 물씬 풍긴다.

디자이너 홍혜진과 임선옥이 이렇듯 여유로운 감수성과 함께
우리 문화유산을 서정적 자신감으로 풀어낸 반면,


디자이너 박윤수의 옷은 강렬한 자신감이 흘러넘쳤다.

외규장각 의궤 중
'현륭원원소도감의궤' 상책에 수록된 백호의 모습이
옷의 흑백 대비, 그리고 눈동자 색을 포인트로 한 색감과 어우러지며
그야말로 강렬하게 런웨이를 지배했다.


왕의 관을 놓아두던 찬궁 네 벽에 그려진 '채색 사수도'가
스터드 장식, 그리고 강한 색감과 만나 더욱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날카롭고도 날렵한 비녀.
그리고 옷 전체에 감도는 용의 비상 등등

디자이너 박윤수는
'외규장각 의궤'에 담긴 우리 왕실의 웅장하면서도 근엄한 표정을 패션으로 되살림과 동시에 당당한 모습으로 우리 문화유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이를테면 문화유산을 계승하고 이를 끊임없이 재창조하는 것이야말로
곧 문화적 자신감이자 자부심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이처럼 은은하면서도 여유롭게, 때론 강하고 당당하게
옷의 선과 면을 타고 흐르는 여인의 자신감이 숨 막힐 듯 느껴졌던,
고궁에서 펼쳐진 패션쇼였는데―
   앞으로 몇 차례 더 비주기적으로 '코리아 헤리티지 패션쇼'를 소개할 예정이니 관심있게 지켜봐주시길 바라며...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래 추천 버튼도 꾸욱 눌러주시고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1. 얼마받아요 2011.10.06 14:27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이런글 써주면 얼마받아요 정말 궁금해서요 ㅎㅎ

    • 하얀 비 2011.10.06 15:54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안타깝게도 땡전 한푼도 안 받고 쓴 글입니다.
      물론 써달라고 부탁받고 쓴 글도 아니고요. 또한 지금껏 어떤 댓가나 돈을 받고 글 쓴 적도 없습니다. 괜한 오해는 마시길. 참고로 코리아 헤리티지 패션쇼는 문화재청이 문화유산 가치의 재발견을 위해 주최한 문화행사입니다. 즉 비상업적인 쇼로서, 패션을 통해 문화유산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입니다.

  2. tha 2011.10.06 16:03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티비에서 박술녀 한복패션쇼 보고 저게 뭐야 했는데 이 디자인들은 개인적으로 굉장히 맘에 듭니다. 세련되면서 전통미도 확 느껴지고 잘 보고 읽고 갑니다

  3. 굴뚝 토끼 2011.10.06 16:29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호랑이 무늬, 가죽소재, 커다란 비녀, 올린머리
    아주 인상적인 디자인이네요.

  4. 핑구야 날자 2011.10.06 17:59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조금은 일본풍이 느껴지는데요,, 비녀때문인가....ㅜㅜㅜ

  5. 여름비 2011.10.07 00:34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관리자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댓글입니다

  6. 2012.03.06 22:07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임선옥선생님 사진중에
    미키마우스 가방들고 있는 사진도 부탁드려용^^
    dlrkgus-_-_-g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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