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요커, 밀라네제, 파리지엥, 런더너."
모습이 구체적이지 않더라도, 마치 물안개처럼 각 도시와 사람들의 이미지가 은은하게 떠오른다. 그리고 도쿄에 살든, 방콕에 살든, 베이징에 살든, 싱가폴에 살든, 서울에 살든 관계없이 이들을 동경하는 수많은 아시아인들이 있다. 얼마 전에 읽은 패션 관련 기사의 제목은 '올 가을엔 런던 쿨을 입자'였다. 작년엔 뉴욕 시크, 재작년엔 프렌치 시크. 무슨 옷을 어떤 태도로 입어야 파리지엥처럼 보이는지 상세히 소개하는 글도 봤다. 우리는 아시아에 살고 있는데―.

아시아 패션



런던 쿨이든 · 뉴욕 시크든
과연 그들이 가르쳐준 방식대로 옷을 입고서 브런치를 즐긴다 한들,
우리가 런더너와 뉴요커가 될 수 있을까.

서울 모처엔 파리지엥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무수한 여자들과 자신이 마치 뉴요커인양 행세하는 남자들이 모여사는 곳도 있다고 한다. 해외 유명 브랜드의 숍매니저와 친하게 지낸다는 걸 과시하면서.

생각해 보면 참으로 요상한 일이다.
그들과 칵테일 잔을 기울인다 해서 피를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인데도, 희석하고 또 희석한다. 90년대 오렌지족의 망상이 여전한 셈이다.


싱가폴의 대표적인 디자이너 '프레드릭 리'의 옷을 눈앞에서 보며
이같은 생각이 꽃다발처럼 스쳐지나갔다. 그는 싱가폴에서 잘나가는 웨딩드레스 디자이너다. 이름은 익히 들어봤고, 그의 화보집을 접한 적도 있지만, 그의 옷을 눈앞에서 직접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수많은 구슬과 자그마한 금속 조각들을 포도송이마냥 이어붙인 황금색 드레스 및 흡사 옷을 뒤집어 입은 듯 솔기가 드러나는 노란색 드레스엔 그의 장인정신이 묻어난다. 벼가 무르익은 황금 들판과 바나나 껍질 속의 오돌토돌한 부드러움이 드레스에 녹아있다.


스타워즈의 아미달라 여왕처럼 화려한 액세서리는
눈뗄 수 없는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복잡한 듯하면서도 정갈하게 여인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언젠가 그의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적도 있는데, 유년기 때 접한 동양의 신화나 전설 속 이미지가 자신의 디자인 영감이라 한다.

그래서 그런지 동양의 토속 문화 및 신앙 요소가 드레스 곳곳에 녹아있다.


흰색 셔츠의 소매를 목으로,
셔츠의 목을 치맛자락으로 변형한 이 옷은
일본의 떠오르는 디자이너 '유 아마츠'의 작품이다.

그는 아방가르드 부문 그랑프리 상을 수상한 경력을 지니고 있는데,
도쿄 패션의 특징을 이 한 벌의 옷으로 엿볼 수 있다.


화려함을 중후한 색채로 녹여낸
중국의 남성복 디자이너 '왕 유타오'는 2010 올해의 남성복 디자이너 상을 비롯, 2년 연속 중국 최고 10인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선정된 바 있다.

모던하면서도 중화권 특유의 감각을 잃지 않는 그의 패션은 중국 젊은이들의 이상과 현실을 옷 속에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래지향적이면서도 중국 문화의 동시대성을 패션으로 풀어낸 그의 작품은 그런 의미에서 독창적이다.


맑은 개울물이 흐르듯 부드럽게 옷감을 마름질한,
부부 디자이너 '맥 앤 로건'의 옷은 레드카펫 드레스로 유명하다. 매년 각종 시상식 및 영화제에서 여자 연예인들이 즐겨찾는 우리나라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이들 부부의 드레스는 단아한 매력이 특히 인상적이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단아함 속에 화려함과 수수함, 관능적 매력과 강인함 등이 유유히 흐른다. 때문에 복잡미묘한 여인의 향기가 옷을 통해 드러난다는 것이 하나의 특징이다.

이를테면 한국적인 멋과 풍류가 옷감 속에 직조되어 있다.


2011 아시아 패션 연합회 한국 총회 및
2012 S/S 대구 패션페어 컬렉션이 열렸던 지난 10월 12일 수요일.

이처럼 개막식 이후에 선보인
아시아 각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들의 연합 패션쇼는―
디자이너 개인은 물론, 그들이 속한 문화권의 개성과 전통적 아름다움이 옷으로 승화된 '한 편의 드라마'였다.

그리고 굳이 어느 나라 디자이너라고 소개하지 않고도,
단지 패션만으로도 그 정체성을 엿볼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뉴욕과 밀라노, 파리와 런던 등이 세계 패션계의 흐름을 주도하는
오늘날 패션 세계에서 아시아는 여전히 변방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 의상을 짧게 잘라 날렵하게 재단하고 간단명료한 색감으로 풀어낸 태국 디자이너의 원피스처럼, 아시아 각국의 디자이너들은 자국 전통의 향기와 정신을 계승하면서도 세계 속에 온전히 자리잡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야말로 부단한 노력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유럽과 북미가 세계 패션의 중심인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혹여나 그들이 우리를 인정하는 말 한마디라도 하면 감동에 겨워하고, 또 가끔씩 유럽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쇼에 동양적 감성을 녹여내면 환호한다.

칭찬과 인정을 받는 건 당연히 좋은 일이다.
하지만 유럽의 유명 디자이너나 언론 매체들이 아시아 패션을 높이 평가해주기를 마냥 기다리는 것보다는, 우리 스스로 우리네 패션에 힘을 실어주고 그 가치와 정체성을 찾아나서는 것이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언제까지 파리지엥이나 뉴요커처럼 행세할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곧 있으면 2012 S/S 서울 패션 위크가 개막하는데,
   우리 패션의 날개짓이 세계로 뻗어나가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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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카르페디엠^^* 2011.10.14 10:17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너무 우아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2. *저녁노을* 2011.10.14 10:25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와..너무 아름답습니다. ㅎㅎ
    세계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우리 나라 손기술...대단하잖아요.

    자 ㄹ보고가요

  3. 핑구야 날자 2011.10.14 12:42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아시아의 패션도 이젠 주목을 받을 만 하죠

  4. 내코 2011.10.14 13:59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그래봤자 기본 틀은 서양의 옷..
    케익에 쌀가루 뿌려놓고 떡이라고 하는거나 똑같음

    • 하얀 비 2011.10.14 14:33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만약에 어머니가 직접 니트 옷을 짜서 준다면, 그 니트엔 어머니의 감성이 스며들겠죠. 이를 두고 기본틀은 남의 옷이라고 말하진 않습니다. 마찬가집니다. 기본틀이 서양의 옷이라 해도 결국은 만든이의 감성과 정서가 디테일과 실루엣을 통해 어떻게 표현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창조적 역량이 발현되는 것일테고, 그 속에서 정체성과 가치가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싶군요.

  5. 루비™ 2011.10.14 14:49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와우....정말 아름답습니다.
    우리의 전통이 배어나오는 새로운 패션이 창조되었네요.
    사진도 너무 멋집니다.

  6. STYLE Mission 2011.10.14 16:25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동양의 미' 라... 정말 좋은글이네요 뷰온누르고 갑니다

  7. 굴뚝 토끼 2011.10.14 17:51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따라하기 단계를 넘어서 독창적인 감성이
    개성이 되는 디자인들이 더 많이 나오기를 기대해봅니다.

  8. EBLIN 2011.10.14 18:39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동양에 미에 대해서 다시 한번 느끼게 되는 포스팅이네요!
    역시 고급스럽고 우아한 모습이에요^^

  9. EBLIN 2011.10.14 18:39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동양에 미에 대해서 다시 한번 느끼게 되는 포스팅이네요!
    역시 고급스럽고 우아한 모습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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