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이벤트처럼"
샤넬이 또 가격 인상을 했고,
그 후폭풍 역시 만만치 않다. 그 조그마한 가방 하나가 차 한 대 값에 육박한다고 하니, 늘 그래왔듯 여론의 화살은 여자들의 사치스러움을 과녁으로 삼았다. 300만원대 가방이 4년만에 700만원대 가방으로 돌변했으니 그 과감한 가격 인상의 지렛대는 곧 여자들이지 않겠냐는 의견도 있다. 하긴 팔리지 않는다면 그렇게 용기있게 가격을 올리지도 못했을 터. 그런데 우리 옛 여인들에게도 지금의 샤넬과 같은 사치품이 존재했었으니 그건 바로―
샤넬이 또 가격 인상을 했고,
그 후폭풍 역시 만만치 않다. 그 조그마한 가방 하나가 차 한 대 값에 육박한다고 하니, 늘 그래왔듯 여론의 화살은 여자들의 사치스러움을 과녁으로 삼았다. 300만원대 가방이 4년만에 700만원대 가방으로 돌변했으니 그 과감한 가격 인상의 지렛대는 곧 여자들이지 않겠냐는 의견도 있다. 하긴 팔리지 않는다면 그렇게 용기있게 가격을 올리지도 못했을 터. 그런데 우리 옛 여인들에게도 지금의 샤넬과 같은 사치품이 존재했었으니 그건 바로―
조선시대의 샤넬
인조머리, 즉 가체다.
기록에 따르면 최소 황소 한마리 값에서부터 중인들의 집 열 채 값에 이르기까지 지금의 샤넬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사치품목 중 하나였다.
머리를 장식하는 가체 하나가 최대 '집 열 채 값'이었으니, 차 한 대 값에 육박한다는 가방은 명함도 못내밀 정도. 그도 그럴 것이 가체를 머리에 얹고 여기에 각종 호화로운 장식을 덧붙여서 자신의 신분이나 사회적 지위를 표현했던 탓에 여력만 된다면 집 수십 채 값에 이르고도 남을 만했다. 물론 무게를 견딜만한 체력도 뒷받침되어야 했을 테지만.
기록에 따르면 최소 황소 한마리 값에서부터 중인들의 집 열 채 값에 이르기까지 지금의 샤넬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사치품목 중 하나였다.
머리를 장식하는 가체 하나가 최대 '집 열 채 값'이었으니, 차 한 대 값에 육박한다는 가방은 명함도 못내밀 정도. 그도 그럴 것이 가체를 머리에 얹고 여기에 각종 호화로운 장식을 덧붙여서 자신의 신분이나 사회적 지위를 표현했던 탓에 여력만 된다면 집 수십 채 값에 이르고도 남을 만했다. 물론 무게를 견딜만한 체력도 뒷받침되어야 했을 테지만.
조선 중기 이후로 접어들면 한복 저고리 길이가 짧아지고
소매가 타이트해지면서 여자들은 상대적으로 더욱 큰 가체를 선호하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었는데, 결국 그 사치의 정도가 극심하여 영정조 때는 가체 금지령 및 제한적 허용 방안이 법적으로 마련되었을 만큼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짧고 타이트한 저고리에 큰 가체를 얹은 여인을 두고 '요물'이라고 칭했을 정도다.
생각해 보면 몇몇 사치와 관련한 사회적 현상과 그 행태를 바라보는 관점은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는 듯.
소매가 타이트해지면서 여자들은 상대적으로 더욱 큰 가체를 선호하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었는데, 결국 그 사치의 정도가 극심하여 영정조 때는 가체 금지령 및 제한적 허용 방안이 법적으로 마련되었을 만큼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짧고 타이트한 저고리에 큰 가체를 얹은 여인을 두고 '요물'이라고 칭했을 정도다.
생각해 보면 몇몇 사치와 관련한 사회적 현상과 그 행태를 바라보는 관점은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는 듯.
지난 1월 17일부터 18일까지 올림픽홀에서 열렸던
2012 아시아 모델상 시상식에선 바로 그같은 옛 여인들의 인조머리 사랑을 극대화시켜서 표현한 쇼가 펼쳐졌었는데, 때마침 샤넬 가방 가격 인상 소식과 맞물리면서 가체와 가방이 묘하게 오버랩되기도 했었다.
2012 아시아 모델상 시상식에선 바로 그같은 옛 여인들의 인조머리 사랑을 극대화시켜서 표현한 쇼가 펼쳐졌었는데, 때마침 샤넬 가방 가격 인상 소식과 맞물리면서 가체와 가방이 묘하게 오버랩되기도 했었다.
사치의 품목이 바뀌었을 뿐 그 사회구조적 욕망은 세월이 몇 세기가 흘러도
여전한 인상이다. 이는 그저 허영심에 기인하는 것만이 아니라 겉으로 드러난 여러 가지 특질로 사람을 줄 세우고 구분하려는 습성 때문이지 않을까. 그래서 조선시대 여인들이 서로의 '큰 머리'를 보며 시기하고 질투했다면, 지금의 몇몇 여인들은 서로의 가방을 훔쳐본다.
여전한 인상이다. 이는 그저 허영심에 기인하는 것만이 아니라 겉으로 드러난 여러 가지 특질로 사람을 줄 세우고 구분하려는 습성 때문이지 않을까. 그래서 조선시대 여인들이 서로의 '큰 머리'를 보며 시기하고 질투했다면, 지금의 몇몇 여인들은 서로의 가방을 훔쳐본다.
이를테면 '얼마나 큰 머리'를 지니고 있느냐에서
요즘은 가방이 샤넬이냐 채널이냐로 바뀌었다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