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 부족했던 건"
실력이 아니라, 관심이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주어진 시간은 여유롭지 않았고, 걱정부터 앞설 만했다. 하지만 냉정하게 되돌아보자. 그들은 패션을 공부했고, 전문 교육과정을 거치거나 마친 20대 중후반 이상의 성인들이다. 지나온 발자취를 도움닫기 삼아 발을 내딛어야 하는 차세대 스페셜리스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션 수행 내내 우왕좌왕하는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시즌4> 도전자들의 모습은 마냥 편치만은 않았다.

프런코4, 김연아 미션 의상 



지난 토요일 밤 10시에 방송된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시즌4> 3화에서
피겨 여왕 김연아가 도전자들에게 의뢰한 미션은 '2013 평창 동계 스페셜올림픽 선수단의 개·폐막식 의상을 만드는 것'.


우선 스페셜올림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소아마비, 척추장애, 시각장애인 등이 참여하는 페럴림픽과 달리, 스페셜올림픽은 다운증후군 등의 지적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국제적인 스포츠 경기다.


미션은 바로 그 선수단이 개·폐막식 때 입고 나갈 유니폼을 제작하는 것.

개·폐막식이라는 특수성과 한겨울에 열리는 올림픽 형태의 대회라는 점,
또 이 대회가 지적발달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 건전한 공동체 문화 형성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 역시 디자인에 앞서 고민해야 할 미학적 요건이다.

30분만에 스케치를 끝내고,
한정된 원단 구입 비용과 정보가 통제된 장소에서 제한된 시간 내에 창의적이면서도 요건에 부합하는 옷을 만들어야 하기에 결코 쉽지 않은 미션이었다.


도전자들은 순전히 자기 자신에게 의존한 채 의상을 디자인해야 했으므로, 평소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고민해보았는지, 아울러 얼마나 주변을 아낌없이 살펴보았는지가 승패를 좌우하는 셈이 된다. 그런데 런웨이에 올라온 프런코4 도전자들의 의상 중에선 자체의 완성도나 창의성과는 별개로, 미션과 거리가 먼 의상들도 많았다.

심지어 스포츠 경기 개막식보다는 클럽 파티용으로 어울릴 법한 옷도 있었고, 선수들이 입을 옷이라기보다는 여배우가 입을 만한 옷마저 있었다. 실망감이 런웨이의 공기를 지배하는 가운데, 미션 우승자로 결정된 의상은 이지승 디자이너의 유니폼.


그녀가 제작한 의상은 겨울 스포츠라는 특징이 잘 반영된 컬러감이 일단 눈길을 끈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차갑게 다가오거나 무턱대고 요란스럽지도 않다. 이는 전체적으로 균일하게 톤을 옅게 처리하면서도 중간중간 네온 컬러를 가미한 덕분.


특히 심사위원들이 방송 중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단청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소매 아랫단 부위의 포인트 컬러 배색은 단연 백미였다. 룩의 균형을 살리면서도 상징성이 돋보였고, 무엇보다 심미적으로 안정감이 있었으며 팔이 길어보이는 효과도 지니고 있었다.

좀더 과감하게 사용하지 못한 이유는 아마 이 때문이지 않았을까 한다.
포인트가 자리잡은 위치의 한계로 인해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을 듯하다. 만약 디자인을 바꿔서 단청 포인트 컬러를 외투 앞판 전면에 곡선미를 살려서 내세우거나, 라펠 등으로 응용했다면 더욱 혁신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이지승 디자이너의 외투는 라이더 재킷의 실루엣과 디테일을 차용한 패딩점퍼다. 지퍼를 어느 정도 올리더라도 깃을 접어 라펠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여 격식성을 살렸고, 패딩점퍼이면서도 날렵한 맵시를 뽐낸다.

단점은 핏감에 집중하다보니 선수들의 활동성을 배려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고, 시간이 부족했던 탓인지 봉제선이 균일하지 못한 점도 눈에 띄었다. 그리고 옅은 톤의 색감은 미학적으로 안정감이 느껴지지만 그만큼 드넓은 경기장 내에서 과연 어느 정도 돋보일 수 있을런지, 관중의 집중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번 미션 우승자에겐 생애 최고의 영광이 주어질 예정이었다.
패션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꿔봤을 법한, 국제적인 스포츠 경기의 개·폐막식 의상으로 사용되는 영예를 누릴 기회였다. 자신의 이름과 옷을 널리 알릴 수 있을 무대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비록 미션에서 우승한 의상임에도
'2013 평창 동계 스페셜올림픽 개·폐막식 의상'으로 낙점받지는 못했다. (단, 디자이너 이지승 우승자는 스페셜올림픽 유니폼 디자인 프로젝트엔 참여하게 된다.)


기능적으로나 심미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의상임엔 틀림없지만,
여러 이유 중에서도 무엇보다 감동이 없었다. 2013 평창 동계 스페셜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설레임과 기대감이 옷에 녹아들어야 했고, 어제 글에서 소개한 '신당 생활사 박물관의 앞치마'처럼 그 옷을 입을 사람의 마음을 충분히 고려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입고 싶다는 마음이 불같이 일어야 하지만
마지 못해 미션 우승 의상으로 선택한 듯한 인상마저 풍겼다.

이는 도전자들의 기술적인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각자의 옷을 미션과 떨어뜨려 놓고 보자면 하나하나 나름의 장점과 개성과 창의성이 드러난다. 다만 생애 가장 큰 추억과 감동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스페셜올림픽 출전 선수들의 마음은 따라가지 못했다.

좋은 옷이란 겉보기에만 아름다운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사람의 내면마저 어루만질 수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을 대표할, 미래를 이끌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자 한다면 이 점을 늘 명심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 시작이니만큼
  그들의 도전과 발전을 다시 한번 기대해 본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래 추천 버튼도 꾸욱 눌러주시고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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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니양 2012.02.13 09:41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우승하는 사람은 정말 좋겠네요..!! 사진 잘 보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2. 일상의 디자인 2012.02.13 10:33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패션디자인 뿐아니라 모든 디자인에 있어 한번쯤 생각해보게하는 3회였습니다. 좋은글 잘읽고 갑니다!^^

  3. effie 2012.02.13 11:59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패션은 아니지만 디자인전공하는자로써 많은것을 생각해 보게 했다는 것에 동감합니다. 자료조사할 시간도 없이 30분만에 스케치를 하고 작업에 들어간다는 것은 왠만한 내공이 쌓인 디자이너가 아니고서야 진행하기 상당히 어려웠을법한 미션이라 생각이 듭니다. 간혹 욕심만 앞서 목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진행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 회를 보니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답답하더라구요 ㅎㅎ..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많은걸 생각하게 했던 회입니다.

    • 하얀 비 2012.02.14 21:33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저 역시 디자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답니다. 단지 예쁘고 아름다워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닐테고요. 무엇보다 정서를 디자인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지만, 그만큼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이 필요한 일이라 생각한답니다.

  4. 핑구야 날자 2012.02.13 12:13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마네킹으로 보니 좀 느낌이 덜하네요.

  5. 굴뚝 토끼 2012.02.13 18:05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라면 하나 끓여 먹는데도 30분은 잡아먹는데,
    유니폼 하나에 스케치만 30분이라....-_-

    방송사가 디자인의 완성도 따위는 관심없고
    허둥거리고 실수하는 디자이너들에 컨셉을 두고 만든 악의가 느껴집니다.

  6. 통통통 2012.02.13 18:06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시간도 시간이지만 디자인쪽에서 아마들과 프로들의 차이는 확실히 큰 것 같아요.
    그런데 이렇게 보니 방송에서 봤던 느낌과는 조금 다르네요.
    괜찮은 것 같아요.^_^

  7. 2012.02.14 01:23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비밀댓글입니다

  8. 뭉탱이 2012.02.15 13:33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어쩜 저리 짧은 시간에 옷 한벌을 뚝딱 만들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3회에 탈락된 남자분의 발언이 조금 거슬렸고, 진짜 실력보다는 말로 떨어진 사람같다는 생각을 했네요. 무례하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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