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mour Fou"
다큐멘터리 영화 '라무르(2010)' 오리지날 사운드트랙의 살얼음같은 피아노 선율이 어스름한 쇼장 가득 내려앉자, 이윽고 턱시도 우먼이 캣워크에 등장했다. 커머번드 안으로 쓰윽 집어넣은, 흡사 폭포수마냥 쏟아질 것만 같은 검정색 넥타이와 조형적인 소프트모자. 선이 가늘지만 탄탄한 재킷과 여유롭게 찰랑거리는 팬츠로 마무리한 그녀는 1960년대의 포스트모더니즘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런웨이로 걸어나왔다. 이름하야 '르 스모킹 수트'.

남성 예복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지만 빌려입은 듯 어색하지 않고
몸에 꼭 맞으면서도 아름다운 턱시도는 원래 그녀의 것처럼 보였다.

진짜 패션왕을 위한 찬가 - 2012 S/S 박동준 패션쇼



'여성에게 힘을 선물하고 삶을 변화시켰다'는 극찬과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패션으로 손꼽히는 '르 스모킹 수트'가 2012 S/S 박동준 쇼의 오프닝 룩으로 등장하던 순간, 쇼의 테마는 분명해 보였다. 하물며 영화 '라무르'의 주제곡이 패션쇼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었으니 누굴 위한 찬가인지 애써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연이어 런웨이를 수놓은 팬츠수트와 턱시도 재킷.
매력적인 여성미가 배경음악과 어우러지며 한 남자의 얼굴이 쇼장 너머로 진하게 오버랩되었다. 열여덟 살에 패션 하우스 '크리스챤 디올'에 입사하여 갓 스무살을 넘길 무렵 '디올'을 이끄는 수석 디자이너가 되었으며, 25세에 자신의 브랜드를 론칭한 20세기의 진짜 패션왕 이브 생 로랑(1936~2008)이다.


디자이너 박동준의 2012 S/S 컬렉션은 바로 패션왕 이브 생 로랑에 대한 오마주다. 테마는 '이터널 시크'. 즉 불멸의 멋. 패션 디자이너에게 이보다 더 값진 찬사가 어디 또 있을까.


르 스모킹 수트와 팬츠수트에 이어 등장한 몬드리안 룩.

직선과 단면, 흰색과 검정색, 빨강·파랑·노랑의 3원색을 통해 사물의 본질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화가 몬드리안의 <Composition with Yellow, Blue, and Red>. 이브 생 로랑은 1965년 자신의 컬렉션에서 이른바 몬드리안 드레스를 발표하며 세기의 주목을 받게 된다. 단순하지만 깊이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웠던, 그러면서도 균형잡힌 실루엣이 안정감을 주던 몬드리안 드레스는 '르 스모킹 수트'와 함께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을 대표하는 불멸의 룩이다.


이브 생 로랑이 몬드리안의 그림을 액자에 넣듯 직선적인 미디 드레스로 표현했다면, 박동준 디자이너는 하늘거리는 점프수트와 턱시도에서 차용한 디테일로 이를 재해석했다. 덕분에 동양미마저 물씬 풍기는 멋진 룩이 탄생했다. 직선과 단면을 곡선 속에 입체적으로 아로새긴 이 옷은 패션쇼의 마지막을 장식하며 이 쇼가 단순한 재현이 아님을 명확하게 알렸다.


2012 S/S 박동준 쇼의 전반부가 이브 생 로랑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면,
후반부는 이브 생 로랑을 오마주한 디자이너 박동준 자신에게로 향한다. 탄탄한 어깨선을 자랑하던 르 스모킹 수트는 좀더 부드러운 곡선미를 지향하며 20세기와 다른 21세기 여성상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테면 본질적이면서도 독보적인 아름다움으로서의 유연한 여성미다. 인체를 은은하게 드러내는 수트 소매와 곡선의 조화를 꾀한 어깨선과 허리선 등은 절대미학으로서의 여성을 찬미한다. 여성의 아름다움을 사랑했던 이브 생 로랑의 유산을 내면화한 디자이너 박동준의 시선이 돋보이는 지점이다.


재킷의 도형적 옷깃과 포물선을 그리는 밑단의 조화. 여기에 무게중심을 잡고 있는 코르셋 벨트는 곡선의 아름다움을 강조한다. 남성복에서 빌려온 아이템 및 색감으로 여성미를 더욱 극대화한 것이다. 패션으로 여성을 아름답게 표현하기 위해 평생 노력했다고 스스로 밝혔던 '므슈 생 로랑'이 후대에 전하고자 했던 헤리티지는 바로 이런 점이 아닐까.


결국 패션은 사람을 아름답게 표현해야 한다는 것.
이브 생 로랑의 트렌치코트를 빨간색 코르셋 벨트로 드레시하게 표현한 디자이너 박동준의 옷은 이같은 명제를 되새기게 한다.


몬드리안 룩의 직선과 컬러를 재해석한 원피스를 비롯하여


미술과 패션의 만남이 특징적인 회화적인 드레스 등에 이르기까지―
드레이핑과 옷깃의 흐름이 자아내는 아름다움의 지향점도 여기에 있다. 특히 그 중에서도 눈길을 끌었던 옷은 신문 드레스.


모자이크 기법으로 신문의 단면과 선을 이어붙인 패턴과 손으로 확 찢은 듯한 재단은 신선한 아름다움을 선사해준다. 미술과 음악·문학 등 예술의 다양한 분야와 패션을 접목시켰던 디자이너 박동준만의 개성은 물론, 여러 예술 분야와 패션의 만남을 통해 후대 디자이너들에게 창의성의 영감을 제시했던 '생 로랑의 유산'도 아울러 엿보였다.


흡사 실제 신문지를 접어 주름을 잡은 듯한 플리츠 셔츠 드레스에 이르면 오마주의 가치도 함께 생각해 보게 한다. 진정한 찬가는 단지 재현에 머물지 않고 선대의 지혜를 바탕으로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점. 화가 몬드리안의 작품을 패션으로 표현한 이브 생 로랑처럼 창의성의 원천을 다양하게 탐색하는 자세 또한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디자이너 박동준의 2012 S/S 컬렉션은
오마주라는 형식을 통해 20세기의 진짜 패션왕에게 찬가를 보내면서도 디자이너 자신의 정체성과 개성을 그 속에 잘 녹여낸 한 편의 드라마였는데―


그래서인지 그녀의 쇼는 지난 세대의 추억과 더불어
   21세기를 휘어잡을 또다른 패션왕의 탄생도 기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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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2.03.28 12:10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요즘 경기가 안좋아 오히려 화려한 의상이 많을 줄 알았는데 어두운 컬러가 많네요

  2. Yujin Hwang 2012.03.28 15:24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제가 그간 불러드리던 하얀비로 개명을..,^^
    닉네임을 보고는 다른분인줄 알았어요...ㅎㅎ
    입고 싶은 옷이 많은 매력넘치는 쇼입니다.

  3. 지이크파렌하이트 2012.03.28 17:34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멋있는 쇼 였군요.
    특히 여성들이 입는 턱시도 스타일, 정말 섹시하고 멋있습니다!
    신문 드레스도 매력 있네요 ㅋㅋ
    '진짜 패션왕을 위한 찬가'라는 주제도 마음에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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