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들도 넋을 잃었다."
하긴 어느 포토그래퍼는 유명 웹사이트 게시판에 2000년대 초반, 패션모델 조명숙 덕분에 패션 필드에 발을 들여놓았다며 고백했을 정도다. 심지어 그는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고 술회했는데, 나 또한 그녀의 카리스마를 여러 차례 목도했었기에 그 짧은 글을 몇번이나 곱씹었다. 김동수를 비롯하여 진희경과 조명숙, 민윤경, 김은심, 이선진, 정재경, 노선미 등등 20세기 후반 한국 패션계를 대표하는 톱모델의 아우라. 충격과 감동이라는 상투적 표현을 진심으로 연발할 수밖에 없는 그녀들. 지금 만나보자.

불멸의 톱모델



흔히 패션모델의 활동 수명은 길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비록 전성기 때처럼 활약이 폭넓거나 촘촘하진 않더라도 산을 뽑을 만한 기운으로 여전히 우주적 존재감을 드러내는 톱모델도 있다.

동덕여대 교수이자 모델학회 회장으로서, 또 저술가이자 연구자로서 폭넓은 활동을 이어오는 1세대 톱모델 김동수는 50대 중반의 나이에도 런웨이를 수놓는다. 여고생 모델과 함께 디자이너 김영세 패션쇼 무대에 오른 그녀의 모습은 얼마 전 EBS '세대여행'에 소개되었고, 9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조명숙과 민윤경 등은 불혹을 넘긴 최근까지도 서울패션위크에서 만날 수 있었다.

MBC '무릎팍도사'에서 신인시절 보석 브랜드 '티파니 쇼' 무대에 오르며 겪은 에피소드로 웃음을 선사했던 장윤주. 당시 신인모델 장윤주와 함께 티파니 쇼에 출연했던 톱모델 김은심은 작년에도 주얼리 쇼 무대에서 화려한 자태를 선보이며 박수 갈채를 받았다.


이소라, 이종희와 더불어 슈퍼모델 시대를 활짝 열었던 박둘선.


지난 3월 11일에 열린 'SBS 2012 K-POP 콜렉션(4월 2일 오후 6시 SBS 녹화 방송 예정)' 무대에서도 관중을 휘어잡았던 그녀는 취미가 사진포즈 연습이라 할 만큼 런웨이 위에서 1~2초에 불과한 짧은 순간만에 완벽한 포토포즈를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한데, 20세기 전후 미국 대중 패션의 신호탄이었던 '깁슨걸 스타일 및 S 커브 실루엣'을 극대화시키며 더블 S 라인 포즈를 취하는 그녀의 자태는 한없이 아찔하면서도 견고하다. 인체의 조형적 곡선미를 인커브와 아웃커브의 완벽한 각도로 표현하는 실력은 그녀가 베테랑임을 증명한다.



1991년에 데뷔하여 신인모델상, 포토포즈상, 올해의 모델상을 섭렵하며 수많은 패션잡지 화보와 밀라노 및 파리 패션쇼를 종횡무진한 조명숙.


앙드레 김 패션쇼의 단골 모델이었던 그녀는 2006년, 세계 최초로 앙코르와트에서 열린 앙드레 김 패션쇼에서 음향 사고 탓에 부득이 음소거 워킹을 했는데 진정 프로였기에 리듬을 잃지 않고 런웨이 무대를 마칠 수 있었다. 수많은 패션 디자이너들이 지난 20여 년 가까이 그녀에게 러브콜을 보낸 이유도 특유의 리드미컬한 워킹 때문.


잔잔하게 흐르던 강물이 갑자기 폭포수가 되어 떨어지는 듯한 역동적인 분위기로 런웨이를 사로잡는 모델 조명숙도 어느덧 40대 중반에 접어들었지만 눈빛이나 감각은 전성기 못지 않은 열정으로 가득하다.



전설적 모델 박영선과 함께 양강 구도를 형성했던 진희경은 무대나 화보를 드라마로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결국 여배우로서 입지를 굳히는 계기가 되었는데, 건조한 눈빛 속에서 미세하게 감성을 발산하는 깊은 우물같은 표정은 지금도 압권이다.


겸손하되 24시간 노력해야 톱모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던 정재경 등 3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의 그들이 아직도 패션 현장에서 영롱한 빛을 발산하는 이유는 런웨이에 오른 그 순간 최대한 집중하는 프로정신에 있다. 참고로 정재경은 '이 정도면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철저한 사전준비로 무대에 임하는 자세와 스스로 개성을 발굴하고 발전시키는 태도가 톱모델로 거듭난 힘이었다'고 밝힌 적이 있는데, 이는 1세대 톱모델 김동수도 모델이 지녀야 할 중요한 덕목으로 앞세웠던 점이다.



"추한 것에도 아름다움은 있다."


바로 이 순간 세계 무대를 휘젓고 있는 오늘의 톱모델 강승현을 모델의 길로 인도한 김동수의 명언. 어릴 때부터 별명이 '못난이'였고, 또한 스스로 못생긴 모델이라 했던 그녀는 미국 유학 생활 중이던 1979년 LA 국제 모델 선발대회에서 3위로 입상하며 곧장 파리 패션계로 진출했다. 데뷔와 동시에 뉴욕과 밀라노, 파리 등 세계 무대를 주름잡던 그녀가 1986년 귀국하자 국내 모델계는 지각 변동이 일었다.


모델 김동수는 최초의 모델학 교과서 집필, 여러 강연회 및 연구와 저술 활동 등 사회학을 전공한 학문적 토양을 밑거름 삼아 모델을 인문학적 사고의 틀로 끌어올린 장본인이다. 4년제 대학에 '모델학'이라는 학술 과목이 개설된 데엔 그녀의 공이 크다. 그녀의 표현대로 '못생긴 여자'가 커리어를 쌓고 당당하게 삶을 마주할 때의 매력이 지니는 아름다움은 진폭이 깊다. 김동수는 지난 34년 동안 무대에서 이를 증명한 톱모델이다. 어쩌면 그런 혜안을 널리 알리기 위해 그토록 '못생긴'이라는 수식어를 즐겨 사용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남과 다른 독보적인 아름다움을 발굴하고 계발하는 것.


저마다 낭랑하게 빛나는 하늘의 별처럼 디자이너 김영세 패션쇼 무대에 오른 '불멸의 톱모델들' 역시 바로 그런 독보적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녀들이 아우토반도 울고갈, 무서운 속도로 변덕이 심한 패션 필드에서 오랜 세월 동안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었던 힘 또한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강고하게 다듬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곧 그녀들의 여전한 경쟁력이다.



"학업성적 미달로 인문계 고등학교 못갔어요."


여상을 졸업한 뒤 보험회사에 취직해 하루 100잔 정도 커피만 타다가 일약 슈퍼모델로 패션계를 호령한 이선진. 강연회마다 그녀는 공부를 못해 여상으로 진학한 이야기, 대구에서 서울로 쉼없이 오가며 모델이 되기 위해 연습했던 시절 등을 솔직히 언급하곤 한다. 그렇게 연습에 집중하던 중 기회가 왔고 톱모델로 거듭난 그녀에게 어느날 대학교수직 제안이 들어왔지만 거절했다고. 이후 수능 시험을 준비하여 경희대에 진학했으며 한양대 대학원을 거쳐 현재 경기대 주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왜 내게만 기회가 없냐고 탓하지 말고, 기회 앞에서 당당해지도록 준비해야 한다."


떳떳하지 못했던 점이 첫 대학교수직 제안을 거절한 이유다. 그리고 학업에 열중한 그녀. 언제 기회가 또 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모델 이선진은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40대 중반의 나이에 조명숙과 함께 서울패션위크 무대 오르는 등 꾸준히 활동하는 민윤경. 또 내 인생에 은퇴란 없다던, 디자이너 이상봉 쇼의 단골 모델이었던 김은심. 그녀는 단 한 명의 디자이너라도 나를 찾는 이가 있다면 모델로 무대에 서고 싶다고 말했었다.



진정한 프로란 어쩌면 이렇듯 최고의 위치에 올라선 뒤에도 꾸준히 노력하며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아닐런지 되돌아보게 한다.



   그래서 아마도 스타들도 넋을 잃고 바라본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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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파르르  2012.04.02 07:50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닉네임..바꾸셨군요....^^

  2. 핑구야 날자 2012.04.02 08:07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넋을 일을만 하네요. 스킨이 조금 바뀐듯 해요 봄단장하셨나봐요

  3. 초록누리 2012.04.02 10:22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김동수님 특히 반갑네요. 저도 몇번 패션쇼에서 본 적이 있는데 압도적 카리스마를 뿜는 분이시죠.
    오래된 모델들인데도 그 포스와 아름다움, 런웨에서의 프로감각은 여전하네요. 전혀 세월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4. de Chaconne 2012.04.02 14:51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같은 사람인데 라인이 어쩌면 저렇게 멋질 수가 있죠....

  5. 뼈델 2012.04.04 20:11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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