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먹을거리가 떠오르지 않을 때"
망설임 없이 발걸음해도 후회하지 않을 음식점마냥 디자이너 고태용의 비욘드 클로젯 컬렉션은 이제 서울패션위크의 단골집이다. 미심쩍은 디자이너의 쇼는 발걸음에 앞서 기존에 발표한 작품을 다시 한번 쭈욱 훑어보는 버릇이 있는 내게 그의 쇼는 이름만으로도 신뢰를 준다. 신명나는 마당놀이 못지 않게 늘 해학의 정서가 옷감을 타고 흘러내린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초기 발표작은 사거리에서 우회전할지, 좌회전할지, 혹은 직진할지 망설이다가 간혹 후진하는 느낌도 없잖아 있었지만 지금은―

직항로처럼 옷에 담긴 이야기가 뚜렷하다는 점도 그의 컬렉션이 지닌 매력이다.

2012-13 F/W 서울패션위크 - 비욘드 클로젯



"선수단 입장!"


2012-13 F/W 서울패션위크(Seoul Fashion Week) 비욘드 클로젯(Beyond Colset)의 새로운 컬렉션 오프닝은 '운동회' 개막식을 떠올리게 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청팀과 백팀으로 편을 나눈 모델들이 단체로 줄무늬 맨투맨 셔츠를 맞춰 입고 손님들을 맞이했으며 객석에 앉아있던 관중들은 흡사 학부모라도 된 듯 흐뭇한 미소로 화답했다.


홈메이드 김밥으로 도시락을 한가득 채우고, 돗자리에 앉아 연신 응원의 함성까지 더한다면 영락없이 초등학교 가을운동회다.



낡은 사진첩을 꺼내 오손도손 내려앉은 먼지를 호호 불고서 오래된 사진을 살뜰히 들여다보게 하는 듯했던 오프닝에 이어 등장한 룩은 아니나 다를까, 클래식과 스포츠웨어의 융합이었다. 엔티크와 모던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감각은 디자이너 고태용(Beyond Closet Design by TAE YONG KO)의 잘 알려진 특장.

아버지의 옷장을 탐내는 소년, 곤충채집에 나선 아이들, 학창시절 교정 풍경, 누구나 흔히 하는 30년 후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고민, 길 가다 만나는 보통 사람들, 군복무 시절의 추억 등등 일상과 기억 및 생각을 낯설게 다듬어 런웨이에 올리는 재주는 온갖 아르바이트로 컬렉션 비용을 충당했던 이 젊은 디자이너의 파격적인 성공 비결이다.


그가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서 '구준표 프레피 룩'으로 일약 스타 디자이너의 반열에 오른 건 단지 운이 좋아서가 아니다. 일관적이면서도 강물처럼 끊임없이 흐르는 그만의 클래식은 매 시즌 흥미로운 이야기로 밤을 지새게 한다. 이를테면 아라비안 나이트 못지 않은 재미가 있다. 그러면서도 미처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위트가 사람들을 유혹하니, 재능과 창의력과 스토리텔링과 노력과 열정이 만나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 셈이다.

과연 누가, '야구 잠바와 수트 재킷'을 하나로 합칠 생각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게다가 등판엔 대문짝만하게 숫자까지 새겨넣었는데, 보는 순간 무릎을 탁 치며 당장 저런 수트 차림으로 버스정류장으로 나서야겠다는 욕망도 꿈틀거렸다. 입는 사람이든 보는 사람이든 둘 모두를 만족시키는 디자이너 고태용의 감질나는 '클래식 스타일'은 이렇듯 잃어버린 원초적 동심을 되찾게 해준다. 낡은 사진첩을 가끔 꺼내보게 하는 떨치기 힘든 에너지처럼.


2012-13 F/W 시즌 디자이너 고태용의 비욘드 클로젯 컬렉션 테마는 운동회(Concept : The sunshine field day). 하지만 마냥 스포츠웨어로 질주하거나, 혹은 디자인이 2차원적으로 머물진 않는다. 비욘드 클로젯 특유의 클래식 스타일에 스포티즘과 엔티크, 모던 등의 분위기를 믹스매치함으로써 되려 신선한 감흥을 자아낸다.

'야구 잠바'의 소매와 연대를 맺은 수트 재킷은 다시 숫자가 찍힌 티셔츠와 만나 익숙하면서도 새롭게 다가오고, 스포티한 슬림 팬츠 위에 도티드 스트라이프 수트 반바지를 덧입혀 카테고리를 무색케 만들었다. 체크무늬 수트에 체크무늬 셔츠를 허리에 두르게 하거나, 팔꿈치에 덧댄 야구공 무늬, 프레피풍 줄무늬 재킷 등에서 엿보이듯 클래식을 중심으로 룩은 다양하게 변주된다.


신발이 죄다 클래식 슈즈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만 봐도 2012 F/W 시즌 비욘드 클로젯 컬렉션의 지향점이 어디로 향하는지 가늠할 수 있다. 즉 야구 배트를 들거나 축구공을 차기 위한 옷이 아니라는 사실. 그보다 일상을 좀더 흥미롭고 재미있게 즐기자는 의도가 강하다. 점잖은 수트 입고 고상한 자세 취하느라 힘 빼지 말고, 수트에 역동성을 가미해 인생을 흥겹게 살자는 주문이랄까.

여기에 넥타이부터 재킷까지 몽땅 셔츠 하나로 흡수시켜버리고 외투로는 진짜 야구잠바를 입도록 특화된 수트는 은근히 예능적이다. 얼마 전 SBS '힐링캠프'에 출연해 진중한 외모와 달리 코믹한 박력댄스로 큰 웃음을 선사한 차인표처럼 런웨이를 장식한 스포티 수트는 무게 중심이 잘 잡힌 위트 덕에 소소한 재미를 준다.


스포츠웨어와 수트의 결합은 2012 F/W 시즌 비욘드 클로젯 컬렉션의 가장 두드러진 요소였다. 두터운 울 코트의 소매 겉면을 자수 놓듯 자잘하게 펀칭을 가미한다든지, 소매를 가죽으로 처리하여 라이더 재킷의 영역마저 침범하는 스태디움 재킷, 만화 속 레이저 불빛같은 붉은색 스트라이프 재킷 등 남성복의 범위를 한층 넓혀놓은 것도 미덕이다.


또한 남몰래 소중히 추억을 간직하는 남자의 타고난 로망에 불을 지핀 것도 빼놓을 수 없다. 표현에 인색한 한국 남자들의 갈증을 제대로 겨냥한 셈인데, 학창시절 가을운동회에 대한 아련한 기억을 새록새록 떠올리게 하는 각종 디테일은 남자들로 하여금 옷 입는 재미를 더해줄 듯하다.


스포티즘 수트에 이어 클래식한 스포츠 룩도 눈길을 끌었다.
일명 '야구 잠바'는 소매가 짧은 카디건이나 롱 코트를 비롯하여 조끼 스타일로 변용되어 컬렉션을 더욱 풍부하게 이끌었으며,


이른바 '떡볶이 코트'의 토글을 사이에 두고 줄다리기를 하는 아기자기한 그림이라든가, 아카데믹한 코트에 튼실한 원통형 백을 매치하여 심심함을 덜어낸 스타일링, 그리고 헤어밴드 및 서로 모양이 다른 단추가 인상적인 토글 코트 등 클래식 아이템에 만화적 요소를 가미한 점도 흥미를 자극한다.


이와 같은 변용은 니트웨어도 마찬가지. 줄무늬와 숫자 등의 디테일을 이용해 스포츠와 클래식의 교집합을 이끌어냈다. 기존의 아이템을 적극 활용하면서도 '낯설게 하기'를 가미한 디자이너의 재치가 돋보이는 지점이다.


이처럼 '가을 운동회'라는 테마 아래 클래식 웨어들이 스포티하게 변주하거나, 반대로 스포츠웨어가 클래식하게 변용되는 등 2012 F/W 비욘드 클로젯 컬렉션은 볼거리가 풍부한 버라이어티 쇼였다. 더불어 옷을 전시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패션을 통해 사람들과 추억을 공유했다는 점 역시 쇼에 활력을 불어넣은 동력 중 하나다.


매 시즌 흡인력 강한 '스토리'를 옷감 너머로 덧입히고, 나아가 '스토리'가 창의적 패션 디자인의 발판이 되는 젊은 디자이너 고태용의 비욘드 클로젯 컬렉션.

   그 때문인지 그의 쇼는 언제나 감성적인 영화를 보고 나온 듯 긴 여운을 준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래 추천 버튼도 꾸욱 눌러주시고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신고


  1. 핑구야 날자 2012.04.12 12:38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반바지가 참 독특하네요.. T셔츠는 그렇게 입어 봤지만...

  2. 아딸라 2012.04.12 17:31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모자나 하다못해 밴드까지라도 무언가 머리장식을 한 것도 눈에 들어와요 ^ ^

  3. 지이크파렌하이트 2012.04.12 20:17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멋있습니다! 최고의 쇼 인듯 합니다!!!
    클래식한 느낌에 스포티함까지 더해 남자의 동심과 로망을 자극한다!
    정말 멋있네요~! 잘 보고 갑니다 :)

  4. 옥돔록돔 2012.04.30 19:16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진짜 이쁘네요 디자이너브랜드란역시...


글 구독하기-아래 버튼만 누르면 된답니다.

+RSS FEED 다른 글 읽어보기
 
블코 추천버튼한RSS 추가버튼구글리더기 추가버튼
※패션쇼 5시간전,백스테이지엔 무슨 일이?
※패션쇼에서 만난 스타들
※페트병과 폐그물이 유니폼으로 변신?
※낡은 청바지의 적나라한 변신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