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 벤디다스"
초대장의 영문 타이틀부터 분위기는 서부적이었다. <벤디다스>는 셀마 헤이웩과 페놀로페 크루즈가 주연을 맡은 2006년작 코믹 서부 액션 영화의 제목이다. 어깨가 드러난 러플 트리밍 블라우스를 코르셋으로 결박하고 웨스턴 팬츠와 부츠, 콘차벨트 차림을 한 그녀들이 총을 잡고서 19세기 초, 충만한 애국충정으로 서부의 무법자가 되는 과정을 담아낸 작품. 영화 속에서 맹모삼천지교를 되새길 만큼 총잡이 유전자를 지녔음에도 관능적인 두 여배우는 겉모습과 달리 과격한 행동거지로 흥행을 이끌었다.

2012 FW Seoul Fashion Week-JOHNNY HATES JAZZ



디자이너 최지형(JICHOI)의 2012-13 F/W 쟈니 헤잇 재즈 컬렉션(Seoul Fashion Week 'JOHNNY HATES JAZZ' Collection)은 바로 영화 '벤디다스'를 모티브(Inspired by the Cowgirl in the western movie "BANDIDAS, 2006, 20th Century Fox")로 한다. 하지만 웨스턴 폰트로 인쇄된 글자에서 진하게 풍기던 서부 개척시대의 향기는 쇼의 시작부터 휘발되었고, 대신 베리에이션이 쇼장을 가득 채웠다.


쟈니 헤잇 재즈의 최지형 디자이너가 서부를 모티브로 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녀는 2010년 F/W 컬렉션에서 북미 지역 최대 인디언 부족인 나바호를 모티브로 '나바호의 꿈'이란 컬렉션을 선보인 바 있다.

서부 개척 시대에 나바호인들은 한겨울에 살던 땅에서 쫓겨나 수백 km 떨어진 곳으로 강제이주를 당하는 등 고초를 겪지만 20세기를 거치며 미국 애리조나 주 윈도락을 수도로 '나바호 네이션'이라는 자치구를 건설한 뒤 오랜 전통과 역사, 문화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인디언이다. 나바호 민속의상 특유의 기하학적인 패턴과 장식성 역시 이른바 '나바호 패션·나바호 시크'라 불리며 단지 코스튬에 머물지 않고 SPA를 비롯하여 하이패션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확장되며 패션계에 무한한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는데, 2010 F/W 컬렉션에서 디자이너 최지형은 나바호 패션의 전통적인 디테일을 활용한 어반시크 룩으로 당시 대내외적인 관심을 이끌었었다.

코스튬을 영감의 원천으로 할 때 전통복식과 현대적인 양식 사이의 균형 유지 및 복각의 의미가 갖는 공감대 형성은 무엇보다 중요한데, 오랜 역사를 지닌 문화에 대한 존중을 밑바탕으로 한 그녀의 컬렉션은 코스튬의 복각과 재해석의 가치는 디테일의 유지나 차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의외성에 있음을 표현하여 자신이 론칭한 '쟈니 헤잇 재즈'의 정체성을 강하게 각인시켰다. 덕분에 서울패션위크 데뷔 2년만에 주목받는 디자이너로 거듭났으며, 당시 그녀의 작품이 서울패션위크를 취재한 뉴욕타임즈에 소개되기도 했다.


의외성은 2012 F/W 컬렉션에서도 엿볼 수 있다. 서부영화를 영감의 원천으로 했지만 그녀의 작품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기존의 웨스턴 룩과는 분명히 차별적이다.

무려 150여 년이라는 깊은 세월 동안 풍부하게 활용된 웨스턴 룩은 그간 시티 웨스턴, 엑티브 웨스턴, 산타페 룩, 카우보이 룩, 리치 웨스턴, 웨스턴 수트, 갬블러 수트, 프런티어 룩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그 영역을 버라이어티하게 확장시키며 정형화된 스타일 중 하나다.
즉, 자칫 잘못 건드리면 패션 디자이너로서 본전도 못 건질 위험한 도박인 셈. 특히 카우걸은 카우보이만큼이나 그 이미지가 화석되었다.


고프레 기법으로 무늬를 새긴 웨스턴 부츠, 솜브레로 및 텐갤런 모자, 반다나 손수건, 단추 여밈 옆솔기선 팬츠, 아이언 버튼, 키스톤 터널 루프, 패그톱 팬츠, 크레센트 포켓, 콘차벨트, 프린지, 스티치 워크와 카우보이 요크 등 그 아이템이나 디테일은 수많은 영화를 통해 전세계로 퍼져나간 웨스턴 룩의 대표적인 상징들이다.

그만큼 디자인이 답보될 수 있는 위험이 내재되어 있다. 영화 <벤디다스> 또한 오락물이지만 시대성이 분명하기에 의상의 활용은 다분히 원시적이다. 다만 여성적인 실루엣과 남성적인 웨스턴 셰이프가 결합하여 관능적으로 표현된 점이 가시적인 포인트다.


네오 벤디다스.
영화 <벤디다스>의 정서는 유지하되, 새롭게 다듬겠다는 디자이너의 다짐. 앙숙으로 지내던 영화 속 두 여배우는 쾌할함 속에 당당함과 자신감을 감추고 있다. 자발적으로 함께 손을 맞잡은 뒤엔 치마 대신 웨스턴 팬츠와 부츠를 신고 총을 들었다. 덕분에 탄탄한 코르셋은 당당함을, 어깨를 드러낸 블라우스는 부여잡은 총에 더 큰 힘을 불어넣는다.

디자이너 최지형의 쟈니 헤잇 재즈는 오락물 너머에 자리한 두 여배우의 정서에 착목했다. 코르셋과 총, 블라우스와 콘차벨트, 웨스턴 웨이브 헤어와 카우보이 요크를 전면에 드러내며 앙숙인 두 여자가 동지가 되는 흐름. 그 변증법적 에너지를 콘셉트로 가져와 패션의 의외성으로 다듬었다.

팬츠의 무릎 아래 부분에 웨스턴 부츠 스타일의 가죽을 덧대 어떤 슈즈를 매칭하든 웨스턴 부츠를 신은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도록 한 것과 울프투스 스타일의 메탈릭한 버튼으로 코트나 재킷을 여미도록 한 것은 그 대표적인 예에 속한다.


모직코트의 따뜻함과 늑대이빨 모양을 한 금속재 버튼의 차가움, 실크 셔츠에 덧붙인 가죽, 울 소재와 만난 라이더 지퍼 디테일, 트렌치코트 위로 가죽과 함께 장식된 징, 원피스를 탄탄하게 떠받치는 스터드 장식의 가죽, 인조 파이톤 가죽과 에나멜 가죽 등 상충되는 요소요소는 분리되기보다는 각각의 소재가 드넓은 들판 위에서 어우러지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마치 애리조나 사막의 모뉴먼트 밸리에서 악수를 청하는 서로 다른 부족의 만남처럼 뉴프런티어 정신이 옷감 너머로 넘실거린다.


이처럼 룩은 건조한 협곡에서 말을 타고 질주하듯 변주로 가득하다. 웨스턴 팬츠의 옆솔기선 역시 패딩점퍼, 모직 코트, 모피 트리밍 재킷, 트렌치코트, 셔츠 등에 패턴과 장식으로 되살아났다. 웨스턴 스타일의 대표주자인 카우보이 요크를 패턴으로 활용한 점은 그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었다.

(본문 위에서 네번째 사진의 모델 이현이가 입고 있는) 네이비 컬러의 셔츠에 오렌지 컬러 가죽을 단선적으로 덧대어 산맥 모양의 요크를 리드미컬하게 표현하거나,


수트처럼 착실한 샴브레이 셔츠 위로 곡선미를 은은하게 살린 요크 디테일을 가미한 점은 얇은 옷감과 대조되는 풍요로운 가죽 칼라의 만남에서도 읽을 수 있듯 룩이 표상하는 베리에이션을 통일성있게 전달하는 요소로 승화되었다. 이는 쇼의 주제는 물론, 그간 쟈니 헤잇 재즈가 보여준 스타일과도 일맥상통하며 정체성을 드러내는 족적의 하나가 된다.


베리에이션은 상충되는 소재의 조화만이 아니라 컬러에도 적용되었다. 블루, 레드, 머스타드, 옐로우, 핑크, 그레이, 화이트 등 다양한 층위의 컬러가 만나 클래식한 하운즈투스 패턴이 활기를 덧입은 것.


사냥개의 이빨이라는 하운즈투스는 그 이름에서도 엿볼 수 있듯 다소 야성적인 무늬다. 날카롭고 차가우며, 예민한 느낌의 패턴 중 하나인데 다채로운 색감과 어우러지며 산뜻하게 변모했다. 변주와 상충, 이질적 요소의 만남이 지향하는 의외성을 읽을 수 있는 지점이다.


2012 F/W 쟈니 헤잇 재즈 컬렉션은 웨스턴 스타일을 모티브로 하지만 이렇듯 정형화된 웨스턴 룩에서 벗어나 디자이너의 감각으로 재탄생했다. 영화 속에서 만나면 싸우기만 하던 두 여자가 힘을 합해 서부를 누비는 무법자로 거듭나듯, 웨스턴 디테일이 현대 의복의 다양한 카테고리와 만나 새로운 느낌으로 무장했다. 개척이라는 당대의 화두는 목장의 나무 울타리 모양마냥 가죽으로 드넓게 구획된 패딩으로, 산맥 모양의 카우보이 요크는 슬리브리스 드레스의 아름다운 여성미를 강조하는 라인으로 변용되었다.


상호배타적 조목의 화합은 2010년 F/W와 2012년 F/W 사이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며 쟈니 헤잇 재즈의 정체성을 명징하게 드러낸다. 대립과 상극이 상생으로 재탄생하는 흐름. 이같은 곡조는 디자이너 최지형을 성공의 길로 이끈 2011 S/S에서도 탐지되는 특장이다. '쿠바 혁명'을 주제로 하늘하늘거리는 드레스에 건벨트(Gun Belt)를 두른 여성의 런웨이. 군용 제품과 여성복의 만남은 총 대신 아름다움의 깃발을 들었다. 의외성으로 중무장했던 패션은 이처럼 웨스턴 룩에도 고스란히 전달되었으니―

   앞으로 또 어떤 의외성으로 즐거움을 줄지 디자이너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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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2.04.23 08:04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여성미를 강조한 라인도 돋보이고 일상복으로 바로 입어도 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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