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충격이 채 가시지 않는다. 진실을 알게 된 그 순간엔 잠시나마 우주의 시간이 멈춰진 듯도 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패션쇼의 반전인 셈이다. 쇼가 열릴 당시만 해도 데뷔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뉴 아이돌 스타였기에 더욱 그러했다. 특별히 아이돌 가수에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이라면 전혀 모를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쇼가 끝나고 한참이 지난 후에 뒤늦게 뒤통수가 뻐근해졌으며, 잠결에 깨어나 마신 물이 해골물이었다는 사실에 충격받은 원효대사처럼 '미'에 대한 나의 마음가짐마저 새삼 되돌아보게 했다.

미모에 멘탈붕괴


디자이너 박윤수의 2012-13 F/W 'BIG PARK' 컬렉션.
멀리서 보면 동일한 원단 조각을 이어붙인 재킷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찬찬히 뜯어보면 가죽과 합성고무, 울 등 서로 다른 소재를 패치워크한 점이 눈길을 끈다.

그래픽적인 패턴은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화가 '알 헬드'의 작품이 모티브. 원근감을 살린 시그널 아트는 스트리트를 콘셉트로 한 의상의 무드를 완연히 살려주는 듯하다.

알 헬드의 회화 작품에서 특유의 건축적인 재질감을 드러내던 아크릴 물감은 패션으로 넘어오며 합성고무로 대체되었다. 가죽과 울, 그리고 합성고무의 일종인 네오프렌이 자아내는 서로 다른 텍스쳐가 입체적인 패턴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재래시장의 포장도로 한복판에서 통통 튀기듯 쇼를 열었던 런던(박윤수의 2012-13 F/W 빅팍 컬렉션은 런던패션위크에서 첫선을 보였었다)과는 배경이 사뭇 다르지만, 런웨이 바닥을 철판으로 장식하여 개발지향적인 도시의 색채를 강조하여 일관성을 유지한 것도 주목할 점.


때문에 여성복의 향연 중 뜬금없이 등장한 남성복임에도 이질적인 느낌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커플 바이커 룩으로 손색없을 정도다. 낯선 남자 모델은 신인 아이돌 그룹 '뉴이스트'의 민현. 물론 얼마 전에야 그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은은하게 내려앉은 안개를 뚫고 때마침 런웨이로 등장한 또다른 모델.

탄탄하게 올이 풀린 레깅스와도 잘 어우러지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가벼운 컬의 염색 머리. 다소 보이시한 외모가 매력이겠거려니 했었다. 민현과 함께 신인 그룹 '뉴이스트'의 멤버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을 땐 요즘 보기 드문 혼성그룹이려니 지레짐작하기도.


그도 그럴 것이 어린 시절의 이영애를 살짝 닮은 것처럼 다가오기까지 했다. 그 유명한 초콜릿 광고 속 그녀의 헤어스타일(비록 컬러는 다르지만)을 비롯하여 턱선이라든가 콧날, 눈매 등이 상당히 흡사해 보였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게다가 이름이 '렌'이다. 실례되는 말일 수도 있지만 충분히 오해할 만하지 않은가.


그가 데뷔 초부터 성별 논란에 시달렸다는 사실은 최근에 알게 되었다. 그렇다.


'렌'은 남자다. 그것도 우연히 본 인터뷰 기사를 읽는 도중 '여성적 비쥬얼이 기획사에서 의도적으로 채택한 콘셉트'라는 대목에선 순간 멈칫하기도 했었다. 뭘 잘못 읽었나 싶었던 것. 그제서야 그가 남자라는 걸 알게 되었고, 그보다 훨씬 전에 열렸던 패션쇼에 대한 기억이 재조립되기 시작하며 그야말로 '멘탈붕괴'를 경험했다.


갓 데뷔한 아이돌 스타가 갑작스레 런웨이 모델로 나타난 이유도 이쯤되니 이해되었다. 가죽과 합성고무를 패치하여 겉보기엔 전체가 가죽처럼 느껴지는 의상의 테마와 '뉴이스트'의 렌은 나름 유기성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일종의 착시현상.


그리고 남자라 생각하며 재차 얼굴을 들여다보니 처음엔 보이지 않던 그만의 선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진리란 마음 속에 있다'는 원효대사의 가르침과 함께.


우리는 가끔 겉으로 드러나는 몇몇 기호만으로 대상을 쉽게 단정짓는 우를 범한다. 또한 우리 자신이 그러한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최근 인터넷 상에서 벌어진 몇몇 마녀사냥식 사건만 보더라도 그렇다.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기준도 마찬가지. 시대는 다채롭게 변하고 있는데 여전히 틀에 얽매여, 또한 자신만의 틀에 갇혀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렌'의 성별과 관련한 오해는 이처럼―

   나날이 굳어져가는 마음가짐을 새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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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2.05.24 12:21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허걱 붕괴될만하네요...ㅋㅋ

  2. 에이글 2012.05.24 13:22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잘보고갑니다 ㅋㅋ 맨탈붕괴조심여 ㅋㅋ

  3. 지이크파렌하이트 2012.05.24 17:28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충격적이네요.. 아이돌 그룹, 그것도 남자 아이돌 멤버였다니...!
    저도 멘탈 붕괴를 느낍니다.. 하하.
    그래도 무대에 선 모습이 무척 멋있습니다. ^^

  4. 모모군(베코) 2012.05.25 00:46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진짜 오해할만한 외모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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