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끝에 다다르면"

완만하던 경사가 감정이 격양된 사람처럼 가팔라지는 것을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그 즈음이면 이 동네가 언덕배기를 중심으로 부채꼴 모양마냥 형성되었다는 점도 눈치채게 된다. 서울 북촌 계동길 중앙고등학교 정문 앞. 할머니는 그곳에서 골목길 아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계셨다. 가로등은 적당히 그늘을 만들어주었고, 언덕배기 바로 밑이라 그런지 바람은 알맞게 시원했다. 누군가를 찾는 듯 인파 속을 깊이 응시하던 할머니는 꼭 들어맞는 옷차림에 선글라스 또한 잊지 않았다.


스트리트 스타일 : 할머니의 주말


청량한 바다색 스카프와 편안한 실루엣의 드레스는 황금비율을 자랑한다. 드레스 끝자락의 컷워크 자수는 얇고 시원한 분위기의 스카프와 무척 잘 어울렸다. 게다가 드레스는 티나지 않게 러닝스티치로 허리선에 주름을 잡은 하이웨이스트 라인이다. 스카프의 길이는 바로 그 허리선을 기준으로 한다. 간격이 여유로운 자잘한 도트무늬 블라우스를 이너웨어로 선택하고 그 위에 그보다 무늬가 큰 드레스를 덧입어 작은 체구에 입체미를 가미한 점 또한 눈에 띄었다. 선글라스는 또 어떤가.

할머니의 얼굴형을 너무나도 잘 살려주고 있다.


네 개의 서로 다른 반지와 봉숭아물이 거의 다 빠진 손톱. 할머니에게 봉숭마물은 시간의 흐름을 확인하는 하나의 수단이었다. 물이 벌써 다 빠졌다며 아쉬워하는 눈빛이 아득하게 다가왔다. 반지 네 개는 일종의 변치 않는 약속이자 징표. 시간에 따라 빠지는 봉숭아물과 달리 반지는 영원한 그 무엇에 해당한다. 신념처럼 꽉 끼운 반지는 할머니에겐 적어도 액세서리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할머니는 지금 주말마다 들른다는 아들을 기다리는 중이다. 화사한 꽃무늬 모자와 깔끔하게 정돈된 신발, 스타일의 중심을 잘 잡고 있는 스카프에 이르기까지 할머니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룩으로 설레임 한가득 마음에 품고 일찍부터 마중 나와 계셨다.


불과 몇 분 정도 지났을까. 할머니는 골목길을 좀더 내려오셨다. 적당히 그늘을 만들어주던 가로등이지만 혹여나 가로등 뒤에 앉아있는 자신을 아들이 미처 찾지 못할까 싶어 저 멀리 아래에서도 훤히 보일 수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기셨다. 그리고 비스듬히 앉아 역시나 선글라스 너머로 골목길 아래를 응시하신다. 토요일 오후,

   할머니의 주말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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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2.06.04 08:15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행복한 미소가 아름다운 어른이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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