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은 내 삶의 일부."

패션 디자이너도, 패션 학도도, 8등신 모델도, 패션 블로거도, 패션잡지 에디터도, 패션숍 관계자도 아닌― 문구점 아저씨가 건넨 말. 사실 딱 마주친 그 순간부터 내심 기대했던 바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연신 두눈을 깜박거리기에 바빴다. 나만의 휴식처(사실 그 주변 사람들은 누구나 아는)인 일명 '벤츠'라는 애칭을 나름대로 갖다붙인 동숭교회 앞 은행나무 아래 의자로 향하던 중 발걸음을 되돌리게 한 패션의 주인공, 대학로 마당문구 사장님.


스트리트 스타일 : 대학로 문구점 아저씨의 룩



그는 인근 극장에서 절찬리 공연 중인 연극배우들과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고 계셨다. 오죽하면 배우임을 눈치채지 못한 내가 '이웃인가봐요?'라고 되물었을까. 메가 히트 뮤지컬 <맘마미아>, <미스사이공> 등의 대본을 비롯 숱한 뮤지컬 및 연극의 초고와 극본을 처음으로 개봉(제본을 위해)한 곳. 부부가 함께 경영하는 소박한 규모의 '마당문구'는 대학로 공연계와 맥을 함께 한 곳이다. 주 고객층 역시 공연 관계자와 배우들.


그리고 87년부터 대학로에서 문구점을 운영한 지 반반세기.

하지만 아저씨의 패션은 세월의 흐름을 무색케 한다.



"혹시...문구,점...?"


연분홍빛 데님 팬츠를 기준으로 전략적으로 선택한 듯한 티셔츠와 보트 슈즈 및 스카프를 문구점 바로 앞에서 마주한 순간, 설마하는 눈치로 아저씨께 여쭤보았었다.


그러자 되돌아온 말씀은,


"문구점 아저씨라고 하면 일종의 (스타일에 대한)편견을 갖는 듯해."


아저씨에겐 일상일 텐데 괜히 호들갑을 떤 내게 있어서만큼은 합당한 일침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문구점(특히 문방구) 아저씨의 스타일에 대한 편견'은 이웃 슈퍼 아저씨 못지 않았고, 말로 형용하기 난감한 정형화된 이미지가 구구단처럼 못박혀 있었던 것이 사실. 그 오랜 편견이 어제(6월 4일) 늦은 오후, 귀가하던 길에 잠깐 산책이나 할까 하며 길을 걷다가 이렇듯 깨지고 말았다.


쇼핑은 직접 하신다. 심지어 아내 옷도 남편인 자신이 골라줄 정도. 젊은 시절부터 남과 다르게 입기를 좋아하셨던 아저씨는 문구점을 운영하는 틈틈이 짬을 내어 인터넷으로 쇼핑을 즐기시는 편인데, 가볍게 두른 스카프는 2천원에 구입하셨단다. 꼭 돈을 많이 써야만 옷을 잘 입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말씀에선 패션에 대한 철학도 분명하게 다가왔다.



처음부터 한눈에 확 들어왔던 시계는 아저씨의 그같은 철학을 엿보게 한다. 무슨 법칙마냥 떠도는(30대 중반 이상을 넘어서면 손목에 하나 정도 둘러야 한다는) '남자와 시계의 상관관계'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스타일에 맞게 시계의 디자인을 선택하는 남자의 감각. 패션을 즐겁게 요리하는 아저씨만의 방식이 진하게 느껴지던 아이템이다.



뿐만 아니다. 이른바 '스트릿 패션이나 길거리 패션'이 흥미로운 이유를 스타일로 친히 증명해주셨다. 이를테면 삶과 문화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나아가 패션 하나로 누군가의 편견마저 톡톡 건드릴 수 있다는 것. 덕분에 답답했던 일상이 갑자기 확 트이는 듯했는데 만남을 뒤로 하고 돌아서는 내내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한 월요일 늦은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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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2.06.05 12:14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정말 멋쟁이시네요... 패션도 용기가 필요한데 대단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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