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웅"

헐리우드 키드를 꿈꿨을 땐 스티븐 스필버그와 제임스 카메론과 리들리 스콧 감독을, 한때 소설에 심취했을 땐 수려한 문체를 자랑했던 이문열과 양귀자, 독자의 호흡마저 조절하는 신경숙, 치밀한 구성력이 돋보이는 최수철과 내면으로 깊이 침잠했던 백석을, 대학에 들어가서는 크리스챤 디올과 이브 생 로랑 및 스티브 잡스를, 또 최근엔 유서프 카쉬를, 그리고 늘 마음 속에 계시는 부모님 등등 삶의 매 마디마다 그들은 나의 눈과 발이 되어주었다.


영웅들의 런웨이 -2부


2012 성균관대학교 예술대학 의상학과 졸업작품 패션쇼의 테마는 바로 '나의 영웅'이다. 그래서 작품 하나하나엔 졸업을 앞둔 학생 디자이너들의 감성이 깊이 묻어난다. 나의 영웅을 스케치하고 직조하는 과정은 또 한편 자신의 삶과 내면을 새삼 반추하는, 마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어제 살펴본 1부(위 슬라이드쇼 참조)는 그 중에서도 역사 책으로 만날 수 있는 영웅들의 재탄생. 작품의 높은 완성도 너머로 그들의 삶을 현미경으로 미세하게 들여다봤을 학생들의 노고가 느껴진 런웨이였다.


'전쟁영웅과 여왕, 슈퍼히어로 및 엄마'라는 네 가지 소주제로 무대를 꾸민 성균관대학교 의상학과 졸업작품 패션쇼의 오프닝을 장식한 역사 속의 인물들이 패션으로 재해석되던 순간, 시대와 역사의 무게는 작품의 카리스마로 대체되었다. 의상 하나하나가 관객을 깊이 끌어당겼기에 화려하면서도 무대는 짐짓 무거운 느낌이었는데, 스테이지가 바뀌고 익숙한 슈퍼히어로들이 눈앞에 펼쳐지면서 분위기는 순식간에 반전되었다.


1-김주희 학생 디자이너 '전우치' 2-이가연 학생 디자이너 '트랜스포머' 3-김태섭 학생 디자이너 '아이언맨'


전쟁영웅 및 여왕이라는 소주제로 꾸며진 앞선 무대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색감. 스테이지의 전작들이 무채색을 비롯하여 톤다운된 컬러가 주를 이뤘다면, 슈퍼히어로를 테마로 하는 이번 무대는 비비드 컬러가 일단 눈에 띈다.


정두식 학생 디자이너-캡틴 아메리카

한규란 학생 디자이너 '그린애로우'


방금 에니매이션에서 톡 튀어나온 듯 발랄한 느낌의 색상은 '슈퍼히어로'라는 테마가 지향하는 바를 명징하게 드러낸다. 비현실적인 환상이 갖는 본질적 측면의 단점도 없잖아 있겠으나, 성인이 되어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그때의 감성을 꺼내보는 작업은 로봇을 조립하듯 조각난 시간의 내면을 다듬는 하나의 과정이 된다.


김신영 학생 디자이너 '원더우먼'

김신영 학생 디자이너 '원더우먼'


대공황을 거쳐 세계전쟁이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 탄생한 원더우먼.

김신영 학생 디자이너의 원더우먼 집업 원피스는 탄생 초기 스커트를 입었으나 점차 짧은 팬츠로 바뀐 원더우먼 룩을 '스커트의 색상과 무늬를 몸의 흐름에 맞춰 피부색에 따라 절개한 일종의 눈속임 기법'으로 표현한 것인데, 코스프레처럼 보일 수 있는 우려를 테크닉으로 커버한 점이 장점으로 다가왔다.


여기서 더 나아가 단지 만화 속 의상의 재현에 국한되지 않고, 세련된 스포티 스타일로 되살린 점도 눈여겨볼 만한 사항.


김주희 학생 디자이너 '전우치'

권효진 학생 디자이너 '판타스틱4'

이수경 학생 디자이너 '스파이더 맨'

이가영 학생 디자이너 '트랜스포머'


이는 슈퍼히어로를 테마로 한 이번 스테이지의 주된 특징. 자칫 디자인을 1차원적으로 해석해 코스프레풍이 될 수 있는 위험을 가볍게 뛰어넘은 힘은 캐릭터가 갖는 환상을 그 만화 속에서만 읽어내지 않고, 우리 주변의 현실 및 일상과 소통하며 독해하려 힘쓴 학생 디자이너들의 노력이 낳은 가장 큰 수확이다.


김윤재 학생 디자이너 '다간'


그 어느 때보다 아웃도어 룩이 패션 업계의 화두로 떠오른 요즘의 시대적 현실과 슈퍼히어로의 룩이 갖는 활동적 이미지를 배합해 캐릭터가 지닌 강인한 내면성을 역동적인 아웃도어 의상과 연결지은 것.


그 가운데서도 특히 이목을 집중시킨 점은 유쾌한 디테일과 상상을 초월한 실용성.


김윤재 디자이너 '다간'

김윤재 디자이너 '다간'


흰색 드레스와 흰색 패딩으로 풍성하지만 미니멀한 룩으로 TV만화 '전설의 용자 다간'을 재해석한 김윤재 학생 디자이너의 재치는 패딩 재킷 주머니 안감에 장식된 총. 놀라웠던 것은 단지 위트만 구현한 것이 아니라,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을 때 세련된 에티튜드가 자연스레 발현되도록 위트를 흥미요소에 머물게 하지 않고 스타일로 표현한 점이었다.


이 하나의 작은 기술 및 디자인 측면만으로도 4년이라는 대학 생활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을 학생 디자이너의 저력이 느껴진다.


이준호 학생 디자이너 '슈퍼맨'

이준호 학생 디자이너 '슈퍼맨'


모던한 슈트와 복고적인 이브닝드레스로 부활한 이준호 학생 디자이너의 슈퍼맨 룩은 볼수록 매력적인 작품. 슈퍼맨의 엠블럼을 큼직하게 새겨넣은 이브닝드레스는 누가 입어도 시크해 보일 것이다. 물론 스스로 웃지 않도록 표정관리만 잘 한다면.


비즈니스 슈트는 디테일의 승리. 넥타이 스타일링은 따라하고 싶을 만큼 심플하면서도 재치있고, 일반적인 핏과 길이의 직장인 슈트임에도 불구하고 선명한 색감의 운동화가 잘 어울린다는 점은 옷 입기에 대한 신선한 영감을 불어넣어준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슈퍼맨 룩이 숨기고 있는 비장의 카드가 있다.


이준호 학생 디자이너 '슈퍼맨'


슈트 재킷과 셔츠가 하나로 결합되어 있다 못해 심지어 지퍼로 여닫게 설계된 것. 클라크가 슈퍼맨으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하는데, 그 결과물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실용적이었다. 하루 24시간을 잘게 썰어 생활해야 하는 직장인들이 탐낼 만한 슈퍼맨 슈트가 아닐까. 슈트나 셔츠 색상을 다양하게 매칭하여 상품으로 내놓는다면 남성복 시장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킬 거라 기대한다.


김태섭 학생 디자이너 '아이언맨'

김태섭 학생 디자이너 '아이언맨'


실용적 위트는 김태섭 학생 디자이너의 아이언맨 아웃도어 룩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겨울 스포츠를 즐길 때 마스크를 쓰고 벗는 반복 과정이 불편했다면 눈여겨볼 작품이다. 그냥 지퍼만 쓰윽 올리고 내리면 끝. 아이언맨의 변신 기술을 응용한 디테일이다.


이관호 학생 디자이너 '배트맨'


등장과 동시에 런웨이 주변을 빵 터지게 한 이관호 학생 디자이너의 배트맨 룩. 직관적인 디자인은 이벤트용으로 활용 가치가 높다.


이관호 학생 디자이너 '배트맨'


이를테면 아들을 위한 아빠의 선물이라거나 혹은 이성을 위한 남자친구의 깜짝쇼랄까. 날개만 빼면 일상적인 옷차림으로도 손색없고, 날개만 더하면 행사용으로도 안성맞춤.


그런데 사실 앞모습보다 뒷모습이 더 인상적인 작품이다.


이관호 학생 디자이너 '배트맨'


뒷모습 실루엣은 볼수록 웃긴다. 화난 여자친구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딱 좋을 코믹 실루엣.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애썼던 순간이다. 단,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및 인파가 번잡한 곳에선 주의할 필요가 있다.



경쾌한 음률에 맞춰 런웨이로 쏟아진 만화 속 '슈퍼히어로'.

아웃도어 스타일로 되살린 슈퍼히어로 룩은 실용성과 위트까지 겸했다는 점에서 무척 매혹적이었으며, 덕분에 졸업을 앞둔 학생 디자이너들이 앞으로 우리 패션계를 어떻게 이끌어나갈지 설렘을 준 무대이기도 했는데

  내일 이 시간엔 런웨이를 눈물로 적신 사연을 소개할 터이니 기다려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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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니양 2012.06.07 09:47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학생 디자이너들이라 표현이 직접적이면서도 개성넘치네요~ㅎㅎ 사진만 보고 어떤 영웅을 표현한 것인지 상상해봐도 재밌겠네요!

  2. 핑구야 날자 2012.06.07 12:11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아이디어가 돋보이네요 학생들의 작품이라 참신하기도 하구요

  3. 에이글 2012.06.07 15:27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아이언맨 복장 대박이네요 ㅋㅋ 재밌으면서도 귀여운 ㅎㅎ

  4. 지이크파렌하이트 2012.06.11 11:23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나의 영웅을 패션으로 만드는 일, 정말 재미있고 의미있는 일 같습니다!!
    정말 다들 멋있네요~! ^^

  5. 가비 2013.03.10 01:28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이준호 학생 작품인
    슈퍼맨 의상은

    콜롬비아 디자이너 가비 의 의상의 98% 모방이네요

  6. 키키 2015.10.21 04:18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문조은학생 잘만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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