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차하면 도대체 언제 다시"

블로그에 글을 쓰게 될지 스스로도 장담하지 못할 만큼, 그리고 콧잔등에 맺힌 땀 한 방울 닦아낼 여유조차 없었던 하루하루의 연속. 서울에서 충남 논산 및 대전을 각각 두번이나 오갔었고, 주말도 없이 새벽 2~3시까지 이어지는 예기치 못한 지난 2주 동안의 태풍 야근 속에 나를 온전히 맡긴 터라 블로그는 뇌구조에서 희미해지기 시작했었다. 이렇게 묻어가듯 그냥 흘러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던 그 순간, 운명처럼 다시 만난 대학로 문구점 아저씨.


스트리트 스타일 : 다시 만난 문구점 아저씨의 룩


6월초, 처음 뵙고 난 후 대략 20일만의 우연한 재회.

아저씨의 패션은 은행에서 볼일 보고 막 나오던 내 발걸음을 처음 만났던 그때와 마찬가지로 딱 멈추게 했고, 또다시 호들갑을 떨게 했다. 만화영화 속에서 탄산수마냥 톡 빠져나온 듯한 로맨틱한 레트로 밀리터리 스타일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만하지 않나.


연식 20년이 넘은 바이크, 옛 정취를 머금은 밀리터리 모자, 모자와 컬러톤을 달리해서 의도적으로 선택한 희미한 나뭇잎색 점프수트, 티셔츠와 색감을 맞춘 물방울무늬 스카프, 등받이처럼 내려앉은 납작한 나무색 백팩 등등 반반세기 동안 대학로에서 문구점을 운영해온 아저씨의 룩은, 도무지 소설이 써지지 않아 귀신사로 떠난 여행에서 '숨은꽃'을 발견한 작가 양귀자처럼 내게 '숨은꽃'이나 다름없었다.


"소화할 수 있을 때 맘껏 입자."

젊은 남자들도 쉬이 선택하지 못하는 점프수트를 오늘의 룩으로 선보인 문구점 아저씨의 패션 철학. 경쟁하듯 옷을 입는 게 아니라 오롯이 스타일 그 자체를 즐기는 것 같다고 말씀드리자 아저씨는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 변화를 주는 한 방법'이라고 하셨다.


큰돈 들인 것도 아니다. 모자는 오래 전 홍대에서 구입했었고, 나머지 아이템도 소박하게 장만했다. 그리고 이렇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아저씨만의 스타일을 완성했다.



인사를 주고받은 뒤에 우리 둘 사이의 화제는 자연스레 아저씨를 모델로 처음 스트릿 패션을 촬영했던 6월초로 되돌아갔다. 이메일로 전해드린 사진을 액자에 담기 위해 출력하셨다고. 당시 둘 사이에 오갔던 대화를 잘 정리해서 글로 다듬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던 아저씨 앞에서 몸둘 바를 몰라 손가락을 꼼지락거렸지만, 한편으론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으로 듣는 칭찬에 발바닥마저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었던 것도 사실.


내 블로그의 다른 글도 재미있게 읽어보셨다는 말엔 바람에 구름 가듯 한 글자 한 글자에 대한 묘한 책임감이 마음 속에서 뭉글거렸다. 그러고보니 스트릿 패션이나 패션쇼 등 오프라인로 만난 분들이 이따금씩 댓글을 남길 때면 늘 그런 숙명이 내려앉곤 한다.



아저씨를 처음 만났던 그때 그 글에 흘리듯 쓴, 쉬고 싶을 때마다 찾는 대학로 동숭교회 앞 은행나무 아래 의자. 나름대로의 별칭 '벤츠'라 부르는 이곳으로 장소를 옮겨 사진 찍자고 먼저 제안한 분은 아저씨였다. 입고 계신 옷차림과도 무척 잘 어울리는, 스타일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최적의 장소. 이를테면 모자와 점프수트는 나무잎과, 백팩은 의자와, 셔츠 및 스카프는 포장도로와 한쌍인 듯 마주한 모습인데 아저씨도 즐겨찾는 좋은 곳이라고 첫만남 때 말씀하셨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나도 미처 몰랐던 나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일깨운 계기였어."


지난 6월 4일, 처음으로 스트릿 패션 촬영에 임했던 아저씨의 감회를 이제서야 전해들으며 '스트리트 스타일'이 지니는 의미 또한 나는 되새겨 보았다. 무슨 옷을 어떻게 입었느냐에 그치지 않고, 개개인의 숨은 가치와 아름다움을 새삼 발견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조금은 거창한 이야기. 스트리트 스타일이 지향해야 할 방향은 곧 개인의 자존감을 재발견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길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아저씨의 말씀에 깨달음을 얻으며 나침반을 꼭 쥐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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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프리홈 2012.06.23 08:25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ㅋㅋㅋ 패셔너블 하네요 잘 봣습니다~

  2. 해피선샤인 2012.06.23 13:34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ㅎㅎ 그 분께는 죄송하지만, 너무 귀여우신 분이네요~

  3. 2012.06.23 19:38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비밀댓글입니다

  4. 핑구야 날자 2012.06.25 08:25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역시 튀어야 되겠죠..패션이 남다른데요

  5. YARIGURI 2012.06.27 21:08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재밌는 아저씨군요..

    오랜만에 인사드리고 가요
    유쾌한 저녁 되세요~~

  6. 색콤달콤 2012.07.02 00:02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아, 남다른 패션감각이 느껴집니다!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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