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음악으로 개성이 분명한 여가수"

Dillon의 노래가 안개마냥 뿌옇게 깔린 패션쇼는 그 노래가 그러하듯 옷의 리듬이 감성과 몸선을 타고 느리게 흐르는 듯했다. 단촐한 무대와 모델의 절제된 발걸음은 그렇다고 해서 지루하거나 난해하진 않았다. 오히려 응축된 열망이 언제 폭발할지 스스로도 짐작하지 못하는 듯 무대는 위태로웠고, 스타일은 긴장이 감돌았다. 원단과 사투를 벌이느라 손에 지문이 닳을 정도였다는 디자이너 문영희의 2012-13 F/W 컬렉션―, 직접 채집한 무대 속으로 들어가보자.


디자이너 문영희


쇼타임을 기다리는, 그리 길지 않은 인내의 시간은 달콤했다. 프랑스 파리 '프레타포르테'에서 이미 선보인 바 있는 작품들이지만(역시 Dillon의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문영희의 파리 컬렉션 필름을 수없이 봐둔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눈과 마음으로 직접 작품을 마주하게 된다는 기대감은 마치 팬미팅을 기다리는 소년의 감성과 다르지 않았다.



경력 40여 년의 패션 디자이너.

쇼장은 객석 뒤쪽의 좁은 통로뿐만 아니라 출입구까지 인파로 가득했다. 수용인원을 가볍게 초과한 실내는 그만큼 관심과 비례한다. KBS 1TV <글로벌 성공시대 - 파리의 패션리더, 디자이너 문영희> 편이 방송되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물론 방송을 통해 그 이름을 처음 접한 대중이 더 많을지도 모르나 지난 1996년부터 17년 동안, IMF 위기를 넘어 프랑스 파리에 직접 진출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파리 프레타포르테'에서 작품을 발표한 저력은 이미 한국 패션계의 기억해야 할 장면이 되었다. 그리고 디자이너 문영희는 여전히 달리고 있다.



시크한 샤워가운 드레스는 그 과정에서 탄생한 멋진 작품이다. 실크와 새틴, 튤과 울의 기묘한 조화는 원단에 대한 세심한 고민과 스타일에 대한 창조적 열정이 만나 이뤄낸 쾌거다. 덕분에 샤워할 때나 걸치던 나이트 가운이 멋진 이브닝웨어로 재탄생했다.


워커와 매치한 샤워가운의 와이드한 라펠과 매달린 듯 떨어지는 소매의 느낌은 균형잡힌 미감을 자랑한다. 옷깃과 소맷부리, 밑단과 벨트 등 적재적소에서 성실히 제 할 일을 다하는 옷감의 앙상블은, 패브릭에 대한 깊은 이해와 관심으로 이름높은 디자이너 문영희의 여전히 역동적인 재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샤워가운의 멋진 변모와 함께 이목을 집중시킨, 한옥 처마를 연상케 하는 '파워 오프 숄더'는 파리 컬렉션에서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해외 패션 블로거들이 앞다퉈 한마디씩 던진 2012-13 F/W 시즌의 키워드.



잘라내듯 드러낸 어깻죽지는 다분히 기하학적인 느낌을 주는데, 그도 그럴 것이 2012-13 F/W 시즌 문영희 컬렉션의 테마는 다름 아닌 '스타일의 건축학적 재해석'.



문영희는 영감을 얻기 위해 삶의 국부를 놓치지 않는다고 한다. 새로운 것은 늘 우리 주변 가까이에 도사리고 있다며 끊임없이 관찰하고 공부한다는 그녀의 태도는 이렇듯 다양하게 변주하는 스타일로 되살아난다.



중학교 1학년(본격적으로 옷을 배우기 시작한) 때부터 60대 중반인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패션'이라는 분야에 오롯이 심신을 내던진 창의력은 대체 어디서 움트는 것일까. 패션 디자이너로서 황금기였던 90년대 중반, 절정에 달했던 부와 명성을 내려놓고 40대 후반의 나이에 홀연히 파리로 떠나 제 2의 패션 도전장을 내민 꿋꿋함의 원천은 무엇일까.



또 우리나라 디자이너로선 최초로 프랑스 정부로부터 국가공로훈장을 수여받은 내공의 원동력과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


"지금 하는 이 일을 앞으로도 꾸준히, 끝까지 하는 것". 60대 중반의 문영희 디자이너가 <글로벌 성공시대>에서 밝힌 소망이 적절한 실마리가 된다.



파리에 직접 진출한 후 단 한차례도 쉬지 않고 컬렉션을 열었던 지속력,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근본에 집중하는 삶의 자세, 일희일비하지 않는 꾸준함이야말로 패션 필드의 멘탈인 파리를 접수한 힘의 근원이다.



디자이너는 디자이너답게 창의적이어야 한다는 소신을 저버리지 않는 것 또한 오늘날의 그녀를 있게 한 뿌리다.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90년대 중반, 부와 명성을 내려놓고 파리로 진출한 도전력은 그만큼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분명했기 때문이며, 그 확신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녀의 컬렉션은 이같은 신념을 명약관화하게 보여주고 있다.



자기 자신을 명확히 바라보고 스스로 신뢰하는 것.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며, 목적지를 정해두지 않고 한 발 한 발 내딛을 수 있는 동력이 바로 파리 패션계를 접수한 디자이너 문영희의 저력이자 내공이지 않을까.


어디가 끝일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이 일을 하겠다는 그녀의 다짐.

디자이너 문영희 컬렉션은 스타일 너머로 이렇듯

  인생에 대한 교훈을 넌지시 던져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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