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과 색이 진한 된장찌개와"

아삭해서 더욱 시원한 김치, 적당히 식은 계란후라이를 곁들인 쌀밥. 딱 요 세 가지는 나의 소울푸드. 된장은 집 천장에 매달려 있던 메주로, 김치는 마당 속에서, 계란은 마당 위 한 켠에 놓인 닭장에서, 그리고 직접 재배한 각종 채소를 할머니께서 손수 다듬고 차려주신 단아한 식단. 아주 어린시절, 그러니까 초등학교 방학 때마다 들르던 시골집에서 맛본 그 풍미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제아무리 비싼 음식점이라 해도 절대 흉내내지 못하는 맛이다.


레슈바빈-오러르의 특별한 채소


벨기에 아가씨 오러르 스켈턴 역시 소울푸드를 잊지 못해 남자친구와 함께 고향의 맛을 찾으러 한국의 농촌 곳곳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펜넬, 엔다이브, 페티펜, 아티초크, 미니당근 등 낯선 이름의 채소들은 우리네 식단에서 쉽게 접하지 못하던 유럽 채소들. 그런데 원산지가 한국이다. 강원도 홍천, 충북 제천, 포천 등 각지를 수소문해서 찾아낸 것.


워낙 시골이라 버스 타고 두 시간, 다시 마을버스를 타고 1시간 반, 또 다시 1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 걸어야 닿을 수 있는 농부의 집. 바로 그곳에서 유기농 유럽 채소를 찾았고 지금은 농가와 직거래 계약을 맺고 직접 채소가게까지 차렸다.



7월 7일 토요일 오후, 경복궁 서쪽의 영추문. 이른바 서촌이라 불리는 동네 중 한곳인 통의동은 서촌 가운데서도 한적한 동네. 드문드문 이어지는 갤러리를 탐방하거나 가볍게 산책하기 좋은 이 길목은 늘 여유롭다.



그렇게 걷다가 만난 한무리의 사람들.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 중인 통의동 보안여관 앞에 모인, 이 길목에서 쉽게 접하지 못하는 인파. 호기심에 슬쩍 들여다본 이곳에서 나는 낯선 모습의 유럽 채소와 벨기에 채소가게 아가씨를 만났다.



선명한 색감의 날씬한 미니당근, 흡사 배추처럼 생긴 엔다이브, 심장을 연상시키는 펜넬, 동화 속에서 갓 튀어나온 듯했던 페티팬. 그리고 샐러리악 등 알록달록한 유럽 채소가 정감어린 분위기로 행인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던 중이었다.



레슈바빈 - 오러르의 특별한 채소.


음식을 소재로 한 청아한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이름의 이 가게는 사실 7월 15일까지 토요일과 일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만 문을 여는 일종의 유럽 채소 전시 및 체험 공간. 8월까지 연장을 고민 중이지만 아직 확정되진 않았다고.



좁지만 여유롭게 꾸민 전시 공간은 벨기에에서 요르단, 서울에서 강원도 홍천과 포천, 충북 제천에 이르는 오러르 스켈턴의 여정과 채소이야기를 소박하게 담았다. 여정을 담은 영상물도 상영했으나 때마침 비디오가 고장나는 바람에 감상하지 못해 아쉽기만 하다.



대신 각종 유럽 채소를 만나는 것은 물론, 오러르 씨가 그 채소로 엄마의 손맛을 따라 직접 조리한 간단한 요리를 맛보는 즐거움이 있다.



미니당근과 사과, 펜넬을 갈아넣고 자두로 풍미를 더한 채소쥬스는 더위를 잊게 할 만큼 상큼한 맛을 자랑한다. 은은한 맛과 향이 일품인데, 피부미용에 특히 좋다고 한다.



쥬스를 마시며 그녀의 삶의 여정과 채소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공장에서 생산한 음료와 차별되는 정감을 느낄 수 있다. 어렸을 때 먹고 자란 음식이 그리워 유럽 채소를 찾아나선 이야기, 그리고 그 채소로 만든 쥬스. 한 개인의 영혼과 추억이 담긴 음료인 셈이다.



오러르의 특별한 채소이야기가 탄생한 배경. 그 여정을 이렇게 벽면에 점선으로 기록한 것인데, 어린시절 맛본 할머니의 된장찌개와 그 시골집을 잊지 못하는 나처럼 그녀도 음식 속에 삶과 추억을 담아내려 했음을 한눈에 엿볼 수 있었다.



채소 전시를 구경하고 나오는 길에 눈에 띄어 구입한 파이. 그녀가 직접 반죽하고 펜넬과 엔다이브, 샐러리악 등의 채소를 다져만든 키슈다.



치즈와 달걀맛이 적당히 균형을 이루는 키슈는 아마 그녀에겐 나의 된장찌개와 같은 맛이 아닐까. 미감이 강하진 않고 부드러우며 담백한 맛이 깊은 여운을 자아낸다. 파이 위에 올려놓은 건 엔다이브. 항산화작용을 비롯하여 섬유질이 풍부하여 피부미용 및 변비 개선에 효과적인 채소.



앉아서 먹을 곳이 마땅치 않다면 경복궁 영추문 맞은 편에 위치한 앙증맞은 공원을 추천. 고요하면서도 시원한 그늘이 여름의 정취를 제대로 느끼도록 이끌어준다.



태권도 사범과 제자로 만나 지금은 결혼을 계획하고 있는 오러르 스켈턴과 박용래 커플. 포즈를 따로 연습한 것인지 물어보니 바로 이 모습이 맛있는 음식을 보고 자연스레 입맛을 다실 때 나는 소리를 표현한 프랑스어 '레슈바빈'의 뜻이라고 하는데, 삶의 여정과 결을 맛으로 표현한 두 분 덕분에 주말 오후 이렇듯―

  담백한 추억 하나 담아가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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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해피선샤인 2012.07.08 15:46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두 분이 너무 잘 어울리네요~ㅎㅎ 요기 괜찮은 것 같아요.. 잘 보고 갑니다~

  2. 핑구야 날자 2012.07.09 08:15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두분의 앙증표정 너무 귀여워요,,,ㅋㅋ

  3. 지이크파렌하이트 2012.07.11 16:30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뭔가, 서울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게 신기하네요~!
    여유로운 느낌이 팍팍 전해집니다.
    나중에 꼭 한번 들러야겠어요! :)

  4. 모스제로 2012.07.12 16:55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너무 재밌게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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