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오늘 처음 봤어요."

그녀는 매일 이곳에 들러 쉬어 간다고 했다. 나는 그녀를 광화문 교보문고 종로 출입구 앞 냇가에서 만났다. 7호 태풍 '카눈'의 북상 소식이 들릴 즈음이었고, 구름이 낮게 내려앉을 무렵이었다.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아 고민이라던 신입사원에게 위로의 말과 내일 보자는 인사를 건네고 집으로 갈까 고민하다 책 구경도 할 겸 발걸음을 돌리던 찰나, 시야에 가득 들어왔던 뒷모습. 그녀는 무엇인가 끊임없이 눈으로 부여잡고 있었다.


스트리트 스타일 : 서울의 보물


모든 객손이 깔끔한 의자에 앉아 교보생명 빌딩 쪽을 바라보고 있을 때, 냇가 돌계단에 앉아 물풀을 응시하던 그녀. 플라스틱 선 바이저 모자와 수건, 일바지와 크록스 샌들, 긴팔 외투로 몸을 감싼 그녀는 패션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흔히 기대하는 스트릿패션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가 쉽게 말하는 '멋의 범주'와도 멀찍이 떨어진 옷차림이다.



처음엔 냇가와 물풀을 바라보는 뒷모습을, 즉 빌딩 공사장 가림막의 숲 사진과 물풀, 냇가 등과 조화를 이루던 그 뒷모습만 동의를 구하고 담아갈 참이었다.


몇 발자국만 움직이면 체한 듯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차량 행렬과 쉬면서도 심각한 속내를 감추지 못하는 직장인들, 광속으로 질주하는 학생들이 병산서원의 병풍마냥 둘러처진 곳에서 만나는 숲(비록 사진이라 해도)의 정경과 편안히 휴식을 즐기는 그 뒷모습이 묘한 여운을 주던 탓이다. 그것도 이 대도시의 심장에서.



그 속에서 그녀는 이렇게 자신만의 쉼터를 발견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만들었다고 해야 옳을지도 모른다. 도시를 향해 등을 돌리고, 인공미가 가미된 개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연을 바라본다. 매일 이렇게 쉬어갈 만큼.


"저기 물잠자리 보여요?"

하이톤의 정확하면서도 깔끔한 목소리로 그녀가 내게 말을 걸었지만 소음 때문인지 아니면 '물잠자리'라는, 다소 의외의 단어에, 혹은 광화문과 종로라는 도시적 특성 탓인지 나는 그만 고개만 갸웃했다.


"저기, 검정색―. 물풀 위에 앉아 있잖아요."

그녀는 손가락으로 내 시선을 움직였다. 하지만 한참을 바라봐도 도무지 찾을 수 없었고, 급기야 나는 그저 발견한 척 연기를 해야만 했다. 대체 어디에 물잠자리가, 그것도 검정 물잠자리가 있단 말인가.



"여기 매일 오는데 오늘 처음 나타났어요. 그리고 지금은 나와 싸우는 중이죠. 저 자리에 앉아 꿈쩍도 않고 있는데 언제까지 저러나 싶어 계속 보고 있는 중이에요."


여전히 내 눈엔 보이지 않는 물잠자리다.



우렁이도 있다며 덧붙였다.

돌 위에 동그랗게 자리잡고 있는 녀석이다.



그렇게 물 속을 살피고 물풀을 한참 바라보던 그때,

검정 물잠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날개를 접었다 폈다 하다가 이내 또 가만히 있기를 반복하는 애교쟁이였다. 그제서야 그녀가 이곳에 오랫동안 앉아 물잠자리와 싸움을 벌이는 중이라는 그 감동이 내게도 전해졌다. 청계천과 한강변도, 숲과 산도 아닌 빌딩 숲에서 만나는 '검정 물잠자리'가 인간에게 선사하는 휴식의 달콤한 유혹을 맛본 것이다. 덕분에 나 또한 그녀와 담소를 나누며 20여 분 동안 물잠자리에게 마음을 의지했다.



좀더 가까이 다가가 촬영하고 싶은 욕심도 없진 않았지만 혹여나 물잠자리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까 싶어 관뒀다. 적당한 거리두기는 대인관계 뿐만 아니라 대자연관계에서도 필요한 덕목이다.



종종 이 냇가에 들르겠다는 인사를 건네고 돌아서서 나오는 길,

새삼 둘러본 광화문 주변.



늘 오가는 길이지만 웬지 새롭게 다가온다. 서울이 지켜나가야 할 보물인 검정 물잠자리와 우렁이와 물풀, 그리고 자연을 가까이 하는 방법을 일깨워준 그녀의 관찰심과 자연을 대하는 혜안을 만난 덕분일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광화문과 종로 거리에서 이렇듯 자연과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는 듯하고, 자연에게 다가가는 거리가 이토록 가깝다는 것도 다시 한번 느낀 하루였다.


평범한, 혹은 뻔한 옷차림의 그녀에게서 나는 참 많은 걸 배운 셈인데 역시 도시든 사람이든 겉모습만 쓰윽 봐서는 안 되는 법이라는 점 역시 아울러 깨달았다.


  스치는 사람에게서도 배울 점을 찾을 수 있고, 늘 보던 곳에서도 이처럼 새로움과 감동을 느낄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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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춥파춥스 2012.07.18 08:17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그쵸..
    헛투로보던 것들도 자세히 관심 가지고 보면 의외로 예쁜 것들도 많고 놀랄 거리도 많더라구요 ♥

  2. 핑구야 날자 2012.07.18 08:19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봄이나 가을뿐만 아니라 요즘에도 보기 좋군요...비가 와서 그런지 영국 같은 기분도,,.

  3. 아빠소 2012.07.18 08:32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그 여자분도 정말 보통분은 아니시네요. 감성이 충만하고, 끈기도 있고 ^^

  4. 지이크파렌하이트 2012.08.02 13:29 신고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저도 자주 가는 곳인데, 전혀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셨네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것들도 관심을 가지고 보면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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